환과 노부모 재혼주선은 효라지만(박갑천 칼럼)
기자
수정 1993-11-20 00:00
입력 1993-11-20 00:00
남녀가 부부로서 만나 검은머리 파뿌리되도록 함께 살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누구나 다 그럴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지 못하고 한쪽이 일찍 세상을 뜰때 남은 한쪽은 재혼을 한다.이젠 뜻이 안맞는다면서 여자쪽에서 생이별에 앞장서고 재혼하는 경우도 많아져가는 세상이다.그러나 남존여비의 전통사회에서는 남자는 재혼을 하면서도 여자의 재혼은 「실절」로 치면서 곱잖은 눈길을 보냈다.
재가의 금지는 고려 공양왕때 나타난다.다만 해당자는 명부와 벼슬한 사람의 아내로서 과부가 된 경우였다.조선조로 내려와 태종6년 대사헌 허응등이 시무육조를 올린 가운데 첫째항목으로서 이문제를 거론하면서 개가한 자의 자손에게는 현직을 내리지 않도록 규정했다.그것이 성종때 이르러 개가한 사람의 자손에 대해서는 「세세로」입사를 금지하는 것으로 강화되어 버린다.숱한 인재를 잃는 악법이었던 셈이다.
그렇대서 개가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더러는 아름다운 개가도 보인다.이육의 「청파극담」에 실려있는 얘기도 그중의 하나이다.세종임금때 영남의 어떤 만호가 군법을 어겨 참수형을 당한다.부인 홍씨는 남편의 시신을 안고 사흘동안이나 통곡하다가 동강난 몸을 이어 장사지낸 다음 3년동안 시묘를 했다.감사로 부임해온 창산부원군이 임금에게 아뢰어 포상하려 했으나 홍씨가 개가한 뒤라서 그만두었다.이사실을 적은 이청파는 홍씨를 이렇게 평가한다.『개가는 했어도 훌륭한 사람 아닌가.장부에 비기자면 예양과 같다』.예양은 진나라의 의인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평균수명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자식들이 환과의 노부모 재혼주선에 나서는 일은 효로 비쳐지고 있다.하지만 그런 노년층의 재혼과 어린 자녀를 둔채 손쉽게 택하는 이혼재혼을 같은 시각에서 말할 수는 없겠다.얼마전 자식들의 반대에 부딪친 40대 재혼부부가 함께 자살한 사건은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제기해준다.
1993-11-20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