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기소외/김정란 시인·상지대교수(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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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1-04 00:00
입력 1993-11-04 00:00
「또 하나의 문화」라는 여성 운동가들의 모임에 나는 이따금 참가하는데 전번에는 「여성으로 말하기」를 주제로 편집된 9호 동인지 발간 토론회에 갔었다.나는 그날 많은 충격을 받았었다.동인의 리더 격인 대학교수들은 책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자평을 했지만 다른 일반 동인들의 생각은 달랐다.어떤 주부 동인은 떨리는목소리로 『여자도 말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으로 알았어요』라고 말했다.그때 그녀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내면에 억눌려 있는 진정한 말,자기 존재를 구현시키는 진정한 자기의 언어.작가 지망생인 한 동인은 차마 남편에게 대고 어떻게 해보지는 못하고 남편이 외출을 하면 그제서야 허공에 대고 『이누무 김가야』하며 삿대질을 해가며 혼자 군시렁거리던 자기 어머니의 일화를 들려 주었다.사정은 지금이라고 별로 나아진 것같지도 않다.여전히 여자들은 자기의 말을 할 줄 모른다.「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최진실을 스타로 만들어준 광고카피가 바로 단적인 증거이다.여성의 가치는 여전히 남성들에 의해 결정된다.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자신의 말이 아니라 남성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 법만을 가르친다.그러는 사이 여성은 교묘한 책략꾼으로 전락하고 여성의 자아는 여성 스스로의 손에 의해 소외되어 버린다.
1993-11-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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