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해서 안될일은 있다(박갑천칼럼)
기자
수정 1993-11-03 00:00
입력 1993-11-03 00:00
전우치는 함경도의 가달산에 웅거하여 행패가 심한 도둑 엄준을 잡으러간다.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기 30여합에 결판이 안난다.그러자 전우치는 몸을 흔들어 제 진짜몸은 공중으로 오르고 거짓몸이 엄준을 대한다.『…우치의 검광이 번개같거늘 대경실색한 엄준이 본진으로 돌아오는데 앞으로 우치 칼을들어 길을막고 또 뒤로 우치를 따르고 좌우로 칼을들어 짓쳐오고 또 머리위로 우치말을타고 춤추며 엄준을 범함이 급한지라…』.다섯명의 판박이 전우치를 엄준은 당해내지 못한다.
이런건 다 재미있게 꾸민 「얘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사람의 재주는 정말로 「여덟명 홍길동」「다섯명 전우치」도 만들어내기에 이른 모양이다.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연구팀이 인간의 배자(배자:태아로 발육되기 전의 수정란)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으로 해서 지구촌이 시끄럽잖은가.판박이인간을 사람 마음대로 만들어낼수 있게 된일이 과연 생명과학의 개가냐 아니면 반윤리적인 인간모독이냐 하는 데서이다.「회남자」(회남자:본경훈)에 나오는 천우속귀야곡이라는 구절을 떠올려보게 한다.창힐이 문자를 만들었을 때 하늘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근본을 버리고 말초에 힘쓰며 사위를 일삼고 경작하는 일을 버림으로써 굶게 될 것을 서러워하여 조(속)를 뿌리자 귀신이 곡했다고 하는 내력을 갖는 말이다.지혜가 따르지 않는 지식의 발달은 필경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한다는 경고 아니었겠는가.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과 해서 안되는 일은 있다.얄팍한 재주를 믿고 섭리의 영역을 건드리는 일은 인간이 해선 안될 대목이다.참람된 일이며 화를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하늘의 이치로써 움직여야 한다.그래야 혼란이 없다.
1993-11-03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