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언론의 북한핵 침묵/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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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10-30 00:00
입력 1993-10-30 00:00
29일자 중국의 기관지 인민일보와 영자지인 차이나 데일리는 한승주외무장관의 방중기사를 크게 보도했다.특히 차이나 데일리는 한장관과 이붕총리 면담기사를 1면에 실었다.한장관과 이총리가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기사비중으로 보면 중국은 한장관의 방중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기사제목도 「이총리는 한국(ROK)과 중국의 관계가 확대되길 희망」이라고 뽑았다.

묘한 것은 어디에도 북핵문제가 논의됐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기사는 모두 무역·투자·산업기술협력분야등 경제·통상분야에 대한 논의로만 이어졌다.물론 한·중 양국의 관계가 북핵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북한과 동맹국인 중국으로서도 북핵은 여간 껄끄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런 점에선 중국 신문들은 「국익」에 충실한 보도를 한 셈이다.아직 배달이 되지 않았으나 한장관이 강택민중국국가주석을 예방,환담한 내용을 다룬 30일자 신문들도 크게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북경에서 만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북핵등 미묘한 문제에 대해 중국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지도층인사에서부터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라고.한장관의 28일 있었던 잇따른 회담도 마찬가지였다.

전기침부총리겸 외교부장이나 이붕총리의 언급이 모두 대동소이했다.「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며 주변국들은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식이다.중국의 국가 기본정책이니 어찌보면 다르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서 지난 7개월동안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온 터이다.그런데도 중국의 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인민일보나 차이나 데일리의 보도도 어찌보면 중국지도층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북핵보도조차 자제하는 중국」­한·중관계엔 「만리장성」은 헐렸지만 아직 「백두산」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이 점을 간과해선 안될 것 같다.
1993-10-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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