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대통령 초상화(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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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9-11 00:00
입력 1993-09-11 00:00
이 초상화들이 최근,정확히는 지난주 토요일 자리를 옮겼다.예전에 있던 곳에서 5m쯤 더 안으로 들어간 세종홀의 전실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최근 청와대는 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비롯,본관의 일부 미술품들을 떼내거나 자리를 옮겼다.문민정부의 이미지와 거리가 먼 작품은 아예 떼내 창고에 넣었고 자리 배치가 잘못된 것은 자리를 옮겨 놓았다.
이작업으로 본관 입구 홀의 왼쪽벽에 걸려 있던 어가행렬도(유양옥작)와 오른쪽 벽면을 장식했던 수렵도(김식작)는 문민정부의 이미지와 걸맞지 않다해서 떼어냈다.관계자들에 따르면 어가행렬도는 문민의 상징인 왕의 행차를 주제로 한 것이지만 그내용은 수백명의 병사들이 나오는 것이어서 문민통치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군부통치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수렵도 역시 무인들이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쏴 사냥을 하는 것이어서 문민시대의 대통령 집무건물에 걸기는 알맞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다.
비문민적 작품들을 떼낸 자리는 그냥 두기로 했다.그자리는 복잡하게 미술품을 걸기보다는 그냥 흰벽면으로 두는게 더 어울린다는게 청와대 미술자문위원들의 견해였다.
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는 이전경위가 좀 복잡하다.
당초 청와대측은 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등신 크기로 그려 본관에 있는 방에 하나씩 걸어 둘 생각이었다.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복도에 걸어두는 것은 예의가 아닐 뿐더러 웅장한 건물내부에 비해 14호는 너무 적다는 생각이었다.
청와대의 처음 생각은 크기와 비치 장소만이 아니라 형태도 현재의 증명사진형 초상화가 아니라 집무실에서 책을 보거나 비서실장과 대화하는 모습등 전직대통령의 각자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초상화를 그릴 생각이었다.외국 원수들이 방문을 하더라도 정상회담을 하는 장소나 만찬장에 그런 모습의 전직대통령 초상화가 하나쯤씩 걸려 있는게 전통도 있어보이고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예산문제에 걸려 수포로 돌아갔다.등신크기의 초상화를 유명화가에게 그리게 할 경우 최소한 한 인물당 1억원 이상씩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왔다.그런 예산이 청와대에 있을리 없다.청와대는 고민 끝에 가끔씩 국무회의실로 쓰이는 세종홀의 전실로 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를 옮기기만 했다.
청와대에 전직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73년부터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이승만·윤보선 전대통령과 자신의 초상화를 동양화가 김인승씨에게 그리도록 했다.이때부터 이 초상화들은 청와대본관의 한 벽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73년도에 그리는 바람에 박전대통령의 초상은 79년 서거할 당시의 얼굴보다 훨씬 젊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최규하 전대통령의 초상화는 박득순씨가 그렸고 전두환전대통령의 초상화는 정형모씨가 그렸다.노태우전대통령의 초상화에는 김형근씨의 낙관이 남아있다.앞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14호 크기인 바람에 뒷 대통령들의 초상화도 자연 14호로 통일됐다.
전전대통령의 초상을 그린 정씨는 화단에도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다.임기말에 경호실장을 했던 안현태씨가 무명인사지만 역량이 있는 정씨를 추천했던 것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은 기억하고 있다.<김영만기자>
1993-09-1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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