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명분에 밀린 양당「합작품」/3대안건 국정조사 여·야합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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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8-27 00:00
입력 1993-08-27 00:00
율곡사업비리및 평화의 댐 건설의혹,12·12사태등 3대안건에 대한 국정조사활동이 드디어 11일간 열리게 됐다.
이미 국정조사권을 발동해놓고도 전직대통령 조사라는 암초에 걸려 실현 자체가 불투명했던 국조활동이 26일 여야총무간의 전격적인 합의로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민자·민주양당은 이처럼 오랜만에 합의를 도출,외견상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일궈냈다는 긍정적인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야 모두 차일피일 조사활동을 미룬데 대한 거센 비난여론과 명분을 의식한 「합작품」이란 점을 부인키 어렵다.
우선 민자당은 국정조사가 실시되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혼자 떠맡을 가능성이 컸고 이것을 가장 우려해온 게 사실이다.
또 감사원의 서면질의와 관련,두 전직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입장을 밝힌만큼 더이상 두사람을 이유로 국정조사활동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여기에다 전직대통령문제로 국정조사활동에 소극적인 민자당의 자세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 청와대측의 시각도 한몫 거들었다는 분석이다.
이와관련,김영구민자총무가 이날상오 신상우국방·서정화건설위원장과 시내 모처에서 회동,청와대측의 이같은 분위기를 전달받아 방향을 바꿨다는 얘기는 주목해볼 부분이다.
민주당 역시 국정조사활동을 관철시켜야만 하는 엄청난 압력을 당안팎으로부터 받아왔다.
때문에 이번 조사활동은 집단지도체제에 따른 구조적 취약성에다 당장악력 부족으로 적지않은 위기감을 느껴온 이기택대표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국면전환의 호기를 맞은 셈이다.
이같은 양당의 속내와 함께 감사원이 전직대통령에게 서면질의를 하고 불응하면 고발까지 하겠다는 지경에 국회가 마냥 「강건너 불구경만 할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여야 모두에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양당간의 합의에도 불구,조사활동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의문시된다.
조사활동기간이 11일밖에 되지않고 그것도 증인및 참고인에 대한 출석요구는 일주일전에 해야하는 규정에 따라 본격적인 증인신문은 다음달 6일이후에나 가능하다.
또 해당상임위가 채택한 증인이나 참고인들 대부분이 지난88년 5공청문회때 나왔던 인사들이고 그들의 면면을 볼때 새로이 진전된 내용을 얻겠다는 것은 기대난이라는 지적이다.
벌써부터 상위소속의원들사이에 『실질적인 소득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오히려 감사원이 한것보다 부실해 국회의 위상저하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의원들도 있다.
나아가 여전히 여야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전직대통령의 증인채택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날 증인관련 합의사항중 「기타 필요한 인물」의 범위를 놓고 김민자총무가 『전직대통령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못박은 반면 김대식민주총무는 『조사필요에 따라 전직대통령도 당연히 증인으로 채택할 수 있다』고 확대해석,상당히 거리감을 보인 것은 이를 여실히 반증하는 대목이다.<한종태기자>
1993-08-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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