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자기 예찬(뉴욕에서/임춘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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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8-13 00:00
입력 1993-08-13 00:00
삼복더위 속에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하는데 개라는 놈은 시원한 정자나무 밑이나 그늘진 툇마루 아래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호사를 빗대는 말이다.이 말에는 나도 낮잠이나 한번 실컷 자봤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같은 것이 곁들여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회는 낮잠을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겨 항상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왔다.밤잠자고,낮잠자고 호구지책인들 될리 만무했던 살림살이에서 그런 인식이 뿌리를 내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낮잠에 대한 사시는 서양도 크게 다를게 없다.점심을 먹고 하오 한때 잠시 눈을 붙이면 정신이 맑아지고 힘도 생겨 일에 오히려 능률이 오른다는 것쯤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다 아는 일인데도 「합리」가 폭넓게 자리를 잡고있는 서구사회에서조차 오수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하긴 서구도 생활에 여유를 갖기 시작한 것이 산업혁명 이후이니 그런 관념이 정착됐을 법도 하다.해지기 전에 일을 끝내지 않으면 안되는 농본사회의 속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로 인체과학분야에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제임스 고만이란 사람이 지난 8일자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흥미있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낮잠이 「당당한 행동」으로 보이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하나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있다.직장에서 일에 능률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은 필요할 때 낮잠을 자도록 허용하는 일이란 것이다.고만은 『우리는 낮잠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우연히 보았다면 그는 낮잠자는 사람에 경의를 표해야할 것』이란 좀 지나치다 싶은 표현까지 쓰고 있다.
그는 연초 낮잠문제에 대한 조사를 했던 한 정부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인용,수년전 일어났던 스리마일 아일랜드 핵발전소의 방사능누출 사건이나 엑슨정유 원유누출사건이 다 근무자의 낮잠부족으로 인한 근무자세의 이완이 사고의주요 원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밖에도 각종 생산공장에서의 수많은 사고와 운전사고의 태반이 낮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만은 또 하루 15분에서 2시간 이내의 낮잠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몸에 경각심을 더해주며 심장질환을 막아주는 데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그의 주장을 빌리면 낮잠은 밤잠을 보충해주거나 밤잠을 적게 자기 위해 필요한 보충적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인체는 구조적으로 낮잠을 자도록 돼있다는 것이다.인간은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드는 중간대에 인체리듬상 정지국면이 있는데 그것을 의학적으로는 「제2의 잠문」이라고 한다면서 그때 휴면을 취하지 않으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고만의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디서 오수를 즐길수 있을 것인가.그럴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다보니 목욕탕으로 가 대낮부터 아예 길게 자리를 잡는 기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요즘 흡연실을 따로 두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모양이다.흡연실보다야 생산적일 휴면실을 두는 것은 어떨까.점잖은 예의지국 체면에 사무실에서 낮잠자는 사람을 보고 차마 「경의」를 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뉴욕특파원>
1993-08-1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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