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제품만이 기업생존의 길(최택만 경제평론)
기자
수정 1993-08-05 00:00
입력 1993-08-05 00:00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이 지난 3월 창립 55주년을 맞아 「제 2창업」을 선언한면서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영혁신 운동은 이회장의 해외현지회의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는 것 같다.이회장은 지난 2월 LA,3월 도쿄,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각각 해외현지회의를 연 바 있다.현재도 오사카·후쿠오카·도쿄를 돌며 회의를 열고 있다.
이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임원들은 해외현지회의에 그치지 않고 도시바·NEC·화낙·후지쓰 등 이른바 세계적인 초일류 전자·기계업체들의 생산현장과 유통시장을 돌며 한달동안 현지연수를 겸하고 있다.이회장이 현지회의를 열고 있는 것은 『자기가 만든 물건이 해외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대접을 받으며 어떤 가격으로 팔리는지 해당임원들이 직접 현장에서 확인하기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그룹 임원들이 확인하고 있는 우리 상품의 위치는 과연 어떤가.엊그제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중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미국·일본·EC 등 선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믿돌았다고 발표한바 있다.우리상품이 3대 선진시장에서 일본제품에 눌리고 중국상품에 밀리며 동남아 국가에서 만든 상품에 쫓기고 있는 실정이다.88년까지만 해도 3대 선진시장에 대한 수출비중이 68.5%에 달했다.
우리의 가장 주요한 시장인 미국 도소매점을 돌아 보면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치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미국 전자제품 전문할인 체인점인 WIZ를 찾아가 우리제품을 찾았으나 그곳에서는 한국제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고 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들려 주었다.취급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딜러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필자가 10여년전 미국 전자제품 전문판매점에서 한국산 전자제품을 보았는데 『그럴리가 있느냐』고 반문했으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이제는 우리전자제품이 미국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시어즈 로빅의 전자제품코너 한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팔려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3∼4년전만 해도 일본 다음으로 우리 전자제품이 미국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었는 데 지금은 그 진열대가 중국·동남아국가·중남미국가 등에서 만든 제품으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이다.일본제품보다는 20% 정도 값이 싼데도 고장이 잘 나고 디자인도 시원치 않아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몇해전까지는 값이 저렴해 그런대로 팔렸으나 이제는 다른 개도국 제품이 훨씬 더 싸 우리제품이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상태로 몇년이 지나면 선진국 백화점의 어느 구석에서도 우리제품을 찾아 볼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기업인이다.삼성그룹 이회장이 주창하고 있는 「질 우선의 경영」은 우리상품의 경쟁력회복 뿐만 아니라 우리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절대절명의 과제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이회장의 표현대로 기업인 자신부터 변해야 일류품질의 상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모든 제품을 일류화시키는 참으로 어렵다.한 기업집단이 한 두개의 업종을 선택해서 자금을 집중투입하여 공정을 개선하고 기술을 개발해도 세계에서 일류가는 제품을 만들기가 힘들다.하물며 현재와 같은 백화점식 경영방식으로는 일류화는 더더구나 실현하기가 불가능하다.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 지금 1위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선두업체와 후발업체간의 이익은 개발시차와 관계가 없이 최소한 10배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 하나의 정설처럼 굳어가고 있다.일류와 이류는 숫자적으로는 일등급의 차이밖에 없으나 실제 경영에서는 10배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회장은 『21세기를 앞두고 남은 7년은 우리가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또는 주저앉고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마지막 결단의 시기라』고 회의때 마다 강조하고 있다.삼성그룹 최고 경영자의 몸부림은 특정기업인의 유별난 행동이 아니다.우리기업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자 자구적의 노력이라 하겠다.다른 기업인들도 한가지 제품이라도 일류화를지향하는 경영혁신운동을 하루빨리 전개하기를 기대하고 쉽다.
기업인의 자구적 경영혁신과 함께 근로자들도 제품 하나하나에 정성과 열의를 쏟아야 한다.기업의 주체들 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우리상품의 일류화를 위해 「총체적 지혜와 슬기」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기업이 살아 남아야 나라와 국민이 살아 남을 수 있기때문이다.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품질에 승부를 걸겠다는 새로운 자각과 혁신운동을 전개하자.<논설위원>
1993-08-05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