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부인(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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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13 00:00
입력 1993-07-13 00:00
등등거리라는 것이 있다.그것과 짝을 이루는것이 등토시이다.등의 줄기를 가늘게 오려서 드문드문 엮어만든 등거리가 등등거리.등토시는 그렇게해서 토시로 만든 것이다.이게 지난날의 납량용품이었다.여름날 그것들을 옷안의 살에 닿게 입고(등등거리)낌(토시)으로써 옷과 살이 떨어져있게 하면 옷에 땀이 배어들지 않는다.그상태에서 부채질을 한다면 땀은 쉽게 증발한다.여름철 부모에게 등등거리 등토시 장만해드리는 것도 큰 효도였다.

방한첫날 경복궁 민속박물관을 안내받은 클린턴미대통령부인 힐러리여사는 죽부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여름철에 더위를 식히기위해 부인대신 함께 끼고잤던 물건』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는『매우 재미있네요』하는 반응을 보였다.정말로 효과가 있느냐고 묻기도 한모양이지만 물론 선풍기·에어컨과같은 수준으로 놓고 얘기할 일이야 못된다.

잘마른 왕대를 숯불에 지지면서 만드는데 길이는 넉자반 정도이고 지름은 한아름쯤의 원통형이다.잔털이 일지않게 손질하는 것이 중요하다.더운여름날 사랑에 기거하는 선비들이품고자느라면 시원하기도 하려니와 허전함까지 덜어준다.아버지가 쓰던것은 아들이 쓰지못하게 되어있으니 그건 비록「죽」자는 붙어있다 해도 아버지의「죽부인」이기 때문이다.등등거리에 등토시따위와 함께 우리선인들의 여름을 나는 지혜의 산물이었다고 하겠다.

「죽부인전」이라는 가전체소설을 떠올리게도 하는 죽부인이다.대(죽)를 의인화하여 절개있는 부인에 비유한 내용으로 고려말의 학자 가정 이곡이 쓴 한문본이다.국운이 기울면서 음란해지는 궁중생활과 그에따라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해가는 사회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지었던듯하다.이곡은 목은 이색의 아버지이다.

힐러리여사는 죽부인뿐 아니라 다른「한국적」인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옛한복과 갓은 말할것 없고 김치또한 그의 관심을 끄는것이었다.우리를 찾아온 외국인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것은 역시「한국적인 것」이리라.
1993-07-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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