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도의와 신앙심/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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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7-06 00:00
입력 1993-07-06 00:00
우리 일상의 삶 가운데 나와 남의 마음을 아프게하며 다투는 일이 무엇때문에 가장 많이 일어나는가 조사해본다면 너나할것없이 교통과 차량운행문제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젠가 나는 차선을 바꾸려다 뒤따라오는 분을 놀라게했나보다.경적을 울리며 뭐라고 해댄다.얼핏 백미러로 보니 아뿔싸,내가 잘아는 우리 교회신자였다.순간 부끄럽고 당황했는데 다행히도 직진신호가 떨어져 위기를 모면했다.색유리 덕분에 그는 미처 나를 몰라본게 틀림없다.후에 만나도 겸연쩍어 그 얘긴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난폭운전,얌체운전,안하무인운전과 부주의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멍들게하는가.우선 그중에 못마땅히 여기는 두가지가 좌회전 차선으로 앞서나가서 막무가내 직진으로 끼어드는 차와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중에도 위협적으로 급정거하며 보도를 밟으며 슬금슬금 나가는 차다.놀라며 분노하는 보행자를 볼때마다 죄스러운 느낌이다.

자동차때문에 좋은 면도 많겠지만 우리 심성과 생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어떻게 가늠할까.거기에 교통사고까지 합친다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게될까.드물지 않게 교통사고사망으로 장례미사를 집전할땐 이것이 우리 모두의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같은 현상은 흔히 우리의 조급한 성격과 생활습관때문이라한다.우리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성이었지않은가.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가.느긋하게 천시를 기다려야하는 천하지대본인 농업을 포기해선가.정보의 홍수시대에 사회변화와 발전속도에 발맞추려는 허덕임인가.숱한 전쟁과 수탈의 역사와 정책의 불안정,요령과 선착순,투기의 시대에 벼락출세 벼락부자 물질적 향락 경제제일주의속에 빗나간 경쟁과 허세가 우리를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가의 어짐,불가의 자비,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이들이 대부분인 이 사회에 왜 이다지도 겸양과 자애와 희생을 교통도의에선 찾기힘든가.이름뿐의 신앙이 많기때문이다.남에게 베푼것이 내게로 돌아온다.벌칙강화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할 형제들임을 명심해야한다.

여기 신앙인들이 솔선해야할 이유가 있다.나는 보행자와 버스엔 우선 양보하련다.「혼자」라는 미안함에서라도 말이다.
1993-07-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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