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위로/박정자(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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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6-05 00:00
입력 1993-06-05 00:00
5월 중순,기압이 낮은 날씨가 내 마음 속 어두은 부분을 자극하고 있었다.그날 나는 두 사람이 하는 연극을 보러 산울림 소극장에 갔다.「위기의 여자」「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하면서 내가 연극을 하는 배우라는,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뼛속까지 절감했던 그 극장에서 나는 관객인 채였다.나는 반드시 긴 행렬을 기대하진 않았다.그러나 관객은 스무명 정도였다.아직도 스무명의 관객 앞에서 연극을 한다는 사실에 나는 서글펐다.

연극이 시작된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한 배우의 목소리 톤이 뭔가 절박하게 들리고,그리고 다른 배우가 무대 뒤로 뛰쳐나갔다.그건 「피한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황황스런 움직임이었다.순간적으로 나는 「사고」를 느꼈다.혼자 남은 무대 위에서 그는 관객에게 말했다.『상대배우가 과로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대를 떠났다.10분만 기다려준다면 다시 공연을 하겠다…』

나는 소리도 못내고 객석에 앉아 울었다.견딜 수 없는 위기를 느꼈다.그 상황은 그 배우에게 일어났지만 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았다.나는 당장 분장실로 내려가진 못했다.위로할 말을 찾지조차 못했다.88년 나는 「웬일이세요,당신」을 하던 이튿날,바로 이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흔들려 대사를 잃어버렸었다.그때 내가 느낀 것은 『죽고싶다』따위의 사치한 감정이 아니었다.어떤 말로도 증발해버리지 못하는 것만이 치욕스러운 그 참담함을 수사할 수 없다.배우는 그것을 안다.

분장실에서 그는 당황스레 대본을 들추며 『어디가 틀렸지! 내가 왜 이러지』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나는 그를 끌어안았다.배우도 인간이다.로봇이 아니다.그래서 실수할 권리가 있다.10분이 지났지만 그는 다시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관객들은 불쾌했을까.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그들은 연극이라는,상처와 고통으로 피흘리는 바로 그 현장 속에 있었다는 것을,나는 그에게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나는 그 약속이 그의 치유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났다.그건 누구를 위로하기 위한 눈물이었을까.나는 모른다.
1993-06-0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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