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의 기자기피증/문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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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5-08 00:00
입력 1993-05-08 00:00
다음날 아침 신차관보의 미국행이 갑자기 취소됐다는 발표가 이어졌다.주말쯤으로 연기됐다는 것.날짜는 밝힐 수 없다는 단호한 부연이 뒤 따랐다.
두번째 사례.보 반 키에트 베트남총리의 방한은 6일에야 비로소 공식 발표됐다.그러나 키에트총리의 방한은 이미 1주일여전부터 베트남에 지사를 두고 있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회사 직원들에게는 주지의 사실.그런데도 외무부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모른다』 『협의중』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보안은 중요한 것이다.북한핵문제같은 국가적 대사를 다루는 외무부의 보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하지만 이미 웬만큼 세상에 알려진 사실을 기껏 날짜 하나 가지고 보안 운운하는 것은 어딘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사실 외무부의 요즘 분위기를 감안하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것도 아니다.외무부는 얼마전 보안사고를 내「범인」을 색출하느라 법석을 떤 적이 있다.또 이에앞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일이 새 나가 고위관계자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담당과에 달려가 『앞으로 유사한 일이 재발할 경우 과장급 간부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엄포를 놓은일도 있다.한승주장관이 정보 누수때문에 부하직원들을 불필요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모과장은 사무실에 기자만 나타나면 퉁명스런 목소리로 『왜 왔느냐』고 묻고는 아주 초보적인 질문에도 무조건 『나는 모른다』고 도리질한다.「딴데 가서 알아보라」는 식이다.
물론 미국상대업무를 맡고 있는 이 과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윗사람들의 질책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평소 기자가 취재목적으로 찾아가도 책상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잡담전화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상대하던 습관이 남아서인지도 모르겠다.어쨌거나 지나친 보안의 부작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대목들이 정말 적절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일까.보안이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그리고 별 대수롭지 않은 사안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돼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1993-05-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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