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박물관」 건립됐으면…/신혜순(여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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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4-14 00:00
입력 1993-04-14 00:00
한평생을 패션산업에 종사해오신 어머니.이때만 되면 봄이 주는 색감을 놓칠세라,여든셋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감흥을 스타일북에 찬찬히 옮겨 놓곤 하신다.또 외할머니와 엄마의 뒤를 이어 뉴욕에서 패션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의 딸.그애 역시 계절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혹돼 캠퍼스에서 자신의 넘쳐나는 벅찬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는 서신을 보내온다.그리고 나.
우리 모계 3대가 한집에서 살면서 어떤 일에 대해 거의 같은 느낌을 가졌던 일을 떠올려보면 패션의 대를 잇는 일이 어쩐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주변 사람들이『너무 부럽다』고 하는 말이 어색하게 여겨질 정도로.
아직도 학원일과 자신의 손길을 거쳐간 패션계 후배들을 챙기느라 늘 바쁘신 어머니와 햇병아리 후배로 힘든 유학생활을 택한 나의 딸,그 사이에서 나는 실무를 맡고 있는 탓에 가장 힘들어 해야겠지만오히려 넉넉함과 평온함이 느껴진다.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 때문일까.
흔히 패션인을 가리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디자이너의 시선이나 감각이 남보다 앞서야하고 남과 다른 각도에서 미를 포착할 수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새것」이란 결코 무에서 탄생된 전혀 생소한 그 무엇은 아니다.오히려 많은 옛것과 경험들이 쌓여 있는 그 가운데서 새로운 것이 하나 어우러져 생겨나는 것이다.그런점에서 나는 이「새로움」의 근원을 물려준 나의 어머니에게 그지없이 고마워하고 내가 살아온 경험을 물려줄수있는 딸의 존재에도 감사한다.
손때묻고 정이 든 오래된 물건들이 유난히도 좋은 것이 그때문인가 보다.우리나라의 패션의 역사를 정립하는 「의상박물관」건립이 어느새 떨치지 못하는 소원이 돼버린것도.
1993-04-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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