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삶의 해체과정 무리없이 그려(TV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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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3-02-16 00:00
입력 1993-02-16 00:00
토속적 영상미로 복고풍드라마의 한 전형을 제시한 SBS창사특집 30부작 「관촌수필」(남홍식 극본,이종한 연출)이 16일로 아쉬운 종막을 고한다.
이문구 원작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관촌수필」은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하는 주인공 민구(양동근분)의 눈에 비친 한 양반가문의 몰락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우리네 전통적 삶의 해체과정을 그린 작품.해방과 6·25를 전후한 좌우이데올로기의 갈등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밑그림으로 전개되는 갈머리(관촌)마을의 궁핍상은 바로 지난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에 더욱 공감을 살만하다.
전통적 정서의 복원을 통해 「잊혀진 자신」을 돌아본다는 어쩌면 다소 「박제된」주제임에도 불구,이 작품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그것은 이 드라마가 최소한 70년대 「팔도강산」류의 계몽·계도적인 분위기에서 탈피,작위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이는 곧 우리가 살아온 진솔한 삶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강요되지 않은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나아가 극적 진실에 보다 접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촌수필」은 원작에의 충실도란 측면에서도 평가할만하다.사실 이문구의 작품은 그 특유의 걸쭉한 입담과 만연체적 스토리전개로 TV극화 하기엔 상대적으로 어려운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연작형태의 원작을 해체해 사건별 혹은 연대순으로 재구성,그 문맥을 브라운관안에 온전히 용해시켜 놓음으로써 손상없는 메시지 전달에 성공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또한 시대극의 「운명」이라 할 세트 및 소품구입의 어려움을 무난히 해소,원작의 무대인 충남 보령군을 중심으로 토속적 정취의 초가집이나 베틀등 당시의 풍물을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극적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신디사이저 대신 국악을 도입,해금가락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한국적 정서와도 맞닿아 있어 연출의도를 제대로 살렸다는 느낌이다.음향효과 또한 TV드라마 사상 최초로 스테레오로 제작돼 현장감을 더해 줬다.
다만 이 작품은 그 예술적 향기와는 별개로 완만한 극적 흐름과애정구도의 결여 탓인지 저조한 시청률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김종면기자>
1993-02-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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