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가 무엇이길래(박갑천칼럼)
기자
수정 1993-02-13 00:00
입력 1993-02-13 00:00
『우리나라에는 문헌이 부족해서 명인)의 성명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안시성주를 두고 말하더라도…(중략)성주의 성명이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빠뜨려져 있으니 실로 애석하다.「월정만록」(월정만록:월정만필이라고도 함.조선 선조때의 문신 윤근수의 글)을 상고해 보면 「임진란 이후 명나라 장수·사졸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 오종도란 사람이 있어 내게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이니 태종동정기에 보인다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중략)아,안시성의 공렬은 우리 역사에 압두하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실로 그 이름을 전송해야 마땅하겠건만 중국인들이 아는 성명을 우리나라에서는 망연히 알지 못한다.…(후략)(홍만종의 「순오지」상).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것에 대한 생각이 어떠하냐를 말해 주는 옛글 두편을 줄여서 옮겨보았다.이런 까닭으로 해서 우리의 역사를 중국이나 일본의 전적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사가 서거정이 「동인시화」(동인시화)에서 지적한바 있듯이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러기도 했고 기록에 대한 의식의 박약,잦은 병화등등에 연유한다 할 것이다.이러한 생각의 줄기를 잇고 있음인가,오늘에도 내것에 어둡고 내것이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사례들은 한둘이 아니다.일상의언어·문자 생활부터 그렇다.
이른바 「밸런타인 데이」라는 것도 그런 점에서 많이 불쾌하게 하는 것중의 하나이다.일부 서양나라에서의 풍습이 우리한테 들어와(그것도 일본을 통해)젊은 남녀들의 명절같이 되어오고 있는게 아닌가.상혼이 나서서 부추기는데 따라 엉덩춤을 춘 결과인데 올해 또한 백화점·호텔들이 대목을 볼양으로 법석대고 있다.문득 그리스신화에서의 헤르메스가 떠오른다.상업의 신이면서 도둑의 수호신이기도 한 올림포스 12신의 하나.그는 어째서 장사와 도둑을 함께 관장하게 되었던 것일까.
YMCA등에 의해 밸런타인 데이 추방운동이 벌여져 오고 있다.올해는 또 정월 대보름을 부럼 선물하며 사랑 고백하는 날로 삼자는 움직임도 있었고.남의 것도 내것의 바탕위에 받아들이게 돼야겠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2-13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