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골도니 2백주기/불 추모공연 붐
수정 1993-01-12 00:00
입력 1993-01-12 00:00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는 1793년 겨울 파리에서 고독과 가난 속에 죽었다.사후 2백주년이 되는 1993년을 맞아 연초부터 그의 명작 희극들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곳곳에서 무대에 올랐다.국립 샤이요극장의 「시골뜨기들」,코미디 프랑세즈의 「충실한 하인」,보르도 드라마센터의 「두 주인의 하인」,코미디 이탈리엔의 「정숙한 신부」등등….
배우 연출가 그리고 대학인들은 「유럽인 골도니」라는 단체를 만들었다.행사로는 그의 작품 공연뿐만 아니라 40개의 희곡작품들과 「회고록」등의 출판,각종 모임과 토론회 등도 있다.토론회는 그러노블 스트라스부르 파리 그리고 그가 태어난 베니스에서도 열린다.그의 전기(제라르 루시아니 집필)도 나올 예정이다.따라서 올해는 그야말로 「골도니의 해」가 되고 있다.
골도니는 1707년 베니스에서 태어났으나 생의 많은 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처음에는 토스카나말과 베니스말로 작품을 쓰다가 나중에는 프랑스말로 썼다.
그가 쓴 작품은 무려 1백60여편에 이른다.이렇듯 많은 희곡을 쓴 작가는 없었다.이탈리아 연극의 개혁자였고 누구보다도 다작이었던 골도니는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너무 많은 작품이 그의 명성을 가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의 작품들이 다시 읽히면서 다작임에도 태작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그는 자신이 살았던 18세기 이탈리아의 소시민 예술가 귀족 노동자 등 갖가지 인물들을 성실하고 재치있게 그려냈다.어느 역사학자도 당시 시대상을 이보다 더 잘 서술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찬사가 주어졌다.등장인물들은 생동감 있고 장면들은 익살맞아서 그의 작품들은 진짜 오락극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카를로 골도니는 어릴때부터 연극을 좋아했다.처음에는 의사가 되려다 포기하고 변호사가 되려 공부하는 틈틈이 작품을 썼다.경찰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39살때까지 직업을 이것저것 바꾸면서 이탈리아 전역을 방황하다가 고향에 돌아가 극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종래의 이탈리아 연극을 뒤엎는 것이었다.훨씬 후세의 브레히트와도 비슷한 연극관을 벌써 지녔기 때문에 화려한 무대의 요정극이나 요구하는 베니스 연극계 실력자들과는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1792년 그가 파리로 이주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같은 불화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파리에서는 극작가로서 어려움없이 활동하면서 한때 프랑스왕 루이15세의 딸들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되기도 했다.
그는 연극의 혁명가라고까지 할수는 없을지라도 양식있는 연극의 장인이었으며 다작의 작가로서 때때로 유행과 타협하기도 했으나 항상 사회적 진실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자의 위치로 돌아간 예술가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파리=박강문특파원>
1993-01-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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