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정복근 극작가(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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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2-26 00:00
입력 1992-12-26 00:00
매해 연말연시가 되면 다가오는 새해를 내다보며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곤 한다.실현가능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계획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면 왜 옛사람들이 멀쩡한 시간을 토막내어 해와 달을 구분지었었는지 납득이 가기도 한다.

그런식의 새삼스러운 노력이 없다면 허물어지고 나태해지기 쉬운 일상을 추스리기가 매우 곤란했을테니 말이다.

결국은 작심삼일에 불과하리라고 미리 생각하면서도 연초에 한순간이나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설날 아침의 차례만큼이나 중요하고 의식적인 일이 되는것 같다.

어렸을 때는 새해에 품는 꿈도 크고 각오도 새로웠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는 차츰 계획의 크기도 줄어들고 포부와 다짐도 자그마하고 물렁해져서 연말의 반성이나 회한의 분량도 전 같지 않다.

차츰 사는 일의 정체를 깨닫고 익숙해져서 별 기대를 갖지 않게 되기 때문이겠는데 그래도 매해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는 일 자체를 단념하지 않는 것을 보면 때로 스스로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를 넘기면서 내가 자신을 향해서 품는 바람과 기대 중의 하나는 새해에는 더이상 사람의 부정적인 면모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이와 컴퓨터게임의 덕으로 지난 한햇동안 눈이 눈에 띄게 나빠졌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서 날이 갈수록 사람의 장단점을 보는 눈이 밝아져서 누군가의 싫은 부분들을 미울만큼 말갛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싫은 것을 보면 슬며시 물러서게 마련이어서 나이를 먹고 미운 눈이 밝아지면서 점점 더 주변이 허전해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부정적인 점만큼 긍정적인 것을 볼수 있는 고운 시력을 지녀서 더이상 사람을 단념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1992-12-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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