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시아 교포언론인,창간 47돌 본사방문/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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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1-24 00:00
입력 1992-11-24 00:00
◎“서울신문 통해 고국소식 들었으면”/교류확대 통한 점진적 통일 바람직/조국발전상 감명… 판문점철조망에 눈물 “왈칵”/한민족거주지·조국기업 연결 무역공동체 필요/언론서 남북동질성회복 캠페인을

중국및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각공화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이들 국가와 경제·문화등 각부문의 협력과 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동포들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크게 높아지고 있다.지금은 우리말과 풍습등 한민주으로서의 전통과 민족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교포 스스로의 노력과 우리정부의 아낌없는 지원도 요구되고 있는 때라 하겠다.이같은 상황에서 교포사회에서 우리말로 발행되는 신문과 우리말 방송은 타국땅에서 이민족들과 섞여 경쟁속에 살아가는 동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지난 1일 중국과 사할린 등지의 동포언론인 23명이 한국프레스센터초청으로 모국을 방문,20일동안 전국 주요산업체와 제주도 경주등을 돌아보고 조국의 발전상을 직접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서울신문사는 창간 47주년을맞아 이들 가운데 우리교포들이 많이 사는 중국 흑룡강성과 길림성,구소련의 사할린,카자흐스탄 알마아타등지 교포언론사 간부 5명을 초청,우리 산업계를 돌아본 소감과 한국과의 경제협력등에 과해 의견을 들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서울신문사는 앞으로 이들 교포언론사와 유대를 강화해서 상호 정보및 인적교류를 추진하고 현지교포를 상대로 신문보급망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편집자주>

□참석자

김충일 흑룡강 신문사 부사장

장정일 연변일보사 부총편집

김형직 중국 중앙방송국 주임기자겸 북경대학조선문화연구소 교수

겸 국제고려학회문화예술부회 위원장

양원식 알마아타 고려일보사 부주필

박해도 사할린 새고려신문사 정치부장

◇김충일부사장=다른 분들은 모국에 두번째지만 저와 연변일보 장부총편집은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름동안 대전 엑스포박람회장과 울산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수원 삼성전자등 여러곳을 둘러 보았습니다.중국에서도 모국 신문등을 통해 조국의 발전상을 알고 있었으나 실제 보도 듣고 나니까 감회가 새롭고 같은 겨레로서 무척 흡족한 마음입니다.서울도 발전상이 눈부셨지만 다른 도시와 농촌도 꼭 같이 잘 살아 기뻤습니다.

◇장정일부총편집=모국이 『아시아의 용으로 부상한것을 기쁘게 생각했었는데 산업시찰을 하며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짚어 보았습니다.그 하나는 모국의 경제체제가 사회주의국가와는 달리 시장경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를 얻는 것이지요.다른 나라는 민족적 우수성이 있는데다 교육열이 높아서 과학기술을 그만큼 빨리 흡수한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김형직주임기자=무엇보다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수출주도형의 전략이 그것이지요.다음으로는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신념입니다.교육열이라는 기본 바탕위에 그런 신념이 용기를 북돋워 준것이 아니겠습니까.그런 배경에서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60·70년대에 한국경제가 기회를 잘 포착한 것이지요.또 지정학적으로 열강들에 의해 쟁탈의 초점이 되었던 냉전시기에 주변세력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우리 국민들이 더 많은땀을 흘리며 경제발전을 이룩한점도 높이 사야할 것 같으며 이번에 그런 점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장부총편집=중국에서는 14차 당대회를 계기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진입했습니다.한국의 시장경제를 보며 느낀 바는 중국도 빨리 체제를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좁은 땅과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업시찰에서 본 모국경제의 발전된 모습들,로봇을 이용한 산업기술과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승용차와 트럭들에서 시장경제는 누구나 받아들여야할 경제발전의 길임을 느꼈습니다.○「88」후 조국 더욱 관심

◇양원식부주필=카자흐스탄대통령이 얼마전 모스크바방송을 통해 연설을 하면서 경제발전의 모범국가로 한국을 예로 들었습니다.한국에는 자원도 크게 부족한데도 30년만에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는데 우리도 본받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그 방송을 듣고 한민주으로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이번에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등 대규모공장을 돌아보고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더 놀란것은 기계화된 시설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공장주변모습이었습니다.우리민족은 어느민족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으며 「나도 한민족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박해도정치부장=저는 지난해 2월부터 두달반동안 모 신문사초청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었고 이번이 두번째입니다.그때도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회사에 가보았었지만 이번에 더욱 폭넓게 발전상을 경험했습니다.저는 언론인으로서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지만 88서울올림픽이후에 사할린교포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많이 이해를 하게됐습니다.

섬이 도단위로 돼있고 경치도 빼어나 놀랐습니다.

사할린에는 3만7천명의 교포가 살고 있는데 내년에 대한항공(KAL)기 피격 10주년을 맞아 추락장소 근처에 추모비를 건립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부총편집=한 중수교이후에 한국과 중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크게 기대되고 있습니다.아직 교포사회에 한국기업이 본격 진출되고 있지는 않지만 동포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다른나라보다 더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사실 비행장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연변지역은 두만강삼각주지역에 위치해 이점이 많습니다.이웃 훈춘시가 중국의 4대 개방시의 하나로 지정되고 개발계획도 잇따라 나오고 있어 한국정부도 연변교포사회와의 기술협조와 자본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연길시에는 4개 경제개발특구가 정해져 있는데 그중 연길시목축장에 한국기업과 중국측이 중국돈 1억원을(원화1백30억원)을 합작 투자할 계획이 있기는 합니다.연변지역은 인건비가 무척 싼 것등 장점이 많아 이 기회에 한국정부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해외교포의 위상이 높아지면 한국의 국력도 신장되고 남북통일로 앞당겨지지 않겠습니까.

○시장경제 전환 필요

◇김부사장=흑룡강성교포들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개방을 크게 환영하고 있습니다.그 개혁과 개방의 방법은 자본주의식 경영방식과 기술을 들여오는 것입다.이미 외국기업이 많이진출해 있습니다.외국과 합작투자한 기업은 5백여개 되는데 한국과 합작한 기업은 1백개정도입니다.그중에서도 50여개기업은 하얼빈에 몰려있어요.흑룡강과 송화강등 중국동북부지역의 3대 강으로 둘러싸인 3강평원 개발에 처음 진출하려한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발을 빼고 말았습니다.그뒤에 한국에서 여러 기업들이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삼익악기로 피아노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합작투자기업들이 소형기업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70%정도가 작은 규모의 기업이며 큰 기업은 대개 산뚱(산동)반도에 들어가 있어요.앞으로 대규모 기업의 합작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김주임기자=한중수교후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개선되고 있습니다.특히 일본등과의 합작사업에 대해선 기술은 주지않고 알맹이만 빼가려 한다는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한국과의 합작사업에서는 기술도 배울수 있고 서로 주고 받는게 있다는 생각을 갖고있어 한국기업의 투자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수교이전에는 실험적인 소액투자에 그치던 한국기업들도 이젠 본격적인 대규모 투자에 관심을 갖는듯 합니다.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좀더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세계사의 흐름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중국만해도 유럽공동체(EC)의 본격출범등 세계적인 「구역선경제」(블록경제)시대에 맞서 피와 말이 통하는 민족경제란 형성에 안간힘을 쓰고있는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민족도 중국의 연변과 독립국가연합(CIS)의 사할린및 카자흐스탄공화국등 한민족 집단거주지역들을 모국의 산업과 유기적으로 묶는 방안과 함께 무역공동체형성에 보다 구체적인 관심과 계획을 가져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양부주필=「친정이 잘 살아야 시어머니 눈총이 덜하다」는 말이 있듯이 해외동포에게 모국은 여러의미에서 방패막이자 자기존재의 뿌리입니다.또 잘살고 단결된 해외동포들은 모국의 해외진출의 교두보이자 자산입니다.유럽전역에 미치는 강한 독일의 힘은 독일국경선밖 중북부유럽 이나라 저나라에 집단거주하고 있는 독일교포들의 영향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킬 필요는 없을것입니다.이런 의미에서 우리외교도 나라밖 동포들의 힘을 하나로 묶고 연결시킬수 있는데까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비무장=양부주필께서도 언급하셨지만 지금 독립국가연합거주 한민족들은 동질성(Identity)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한예로 카자흐스탄내 10만 한인들중에 우리말을 쓸줄아는 사람들은 기껏 수십명에 불과합니다.물론 우리말을 들고 말할수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조금 많다고는 하지만 모두 교포1·2세대에 국한돼있고 우리말을 할줄 아는 3세들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기업 합작투자 희망

이대로 가다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20년쯤뒤엔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우리말과 글을 할 줄아는 동포를 독립국가연합에선 한 사람도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단순한 우려만은 아닐것입니다.현지에 한국어교육기관설립이나 3세교포자녀들을 대상으로한 보다 대규모의 우리말연수프로그램의 활용등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느낌니다.

◇양부주필=모든종류의 교류가 그러하듯 오랜세월동안 절연돼 있던 모국과의 교류가 물론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것은 아닙니다.모국과 교류가 활발한 중국 연변등지에선 「남조선사람」들의 향락관광등이 문제가 된것으로 알고있지만 카자흐스탄등에서의 문제는 종교포교활동입니다.카자흐스탄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에서만 한국에서 「원정」나온 개신교 교회가 15개나 됩니다.수백명의 한인들이 그곳을 나가기도 하지만 동포를 포함해 회교도가 대부분인 이곳 주민들과의 포교활동을 둘러싼 반목과 갈등은 점점 커가고 있습니다.너무 적극적이고 기독교우월주의적인 포교내용등은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주임기자=교류의 부작용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모국을 다녀온 「중국내 조선족」들에겐 기쁨보다는 섭섭함이 더 강하게 남아있습니다.한마디로 이들 동포들은 모국에 가서 「인간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말합니다.중국교포들로 인해 적잖은 불편이 있더라도 동포애의 따뜻한 눈으로 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교포사회에서는 한국은 선진국수준과는 차이가 큰데도 불구,너무 자만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눈길도 적지않다는 것을 이 기회에 일러드리고 싶습니다.

◇박부장=냉전붕괴이후 독립국가연합에서의 새로운 현상중 하나는 교포사회가 친남·친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사할린지역만해도 북쪽의 국적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5백여명미만에 불과해 친북쪽 인사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포사회에 관심을

◇김부사장=이번 방문기간중 막상 판문점에서 철조망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동족상쟁과 그 오랜 적대관계,그 와중에서 우리는 모두 희생자란 생각도 들고….

말할것도없이 통일은 우리민족의 최대 현안사업입니다.그러나 아무리 급한 사업이라도 교류확대와 동질성 강화를 통해서만 이뤄내야 합니다.또다시 동족끼리 피를 흘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김주임기자=저도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통일은 시급한 과제지만 독일의 예에서 보았듯이 그 비용과 부작용등을 생각할때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그러하더라도 최근의 국제적인 추세를 볼때 10년내로 큰 전기가 오지않을까 하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양부주필=저도 동감입니다.쑥스러운 이야기지만 흔히 사회주의국가 국민들은 양떼에 비유됩니다.어려서부터 명령과 통제에만 익숙하고 자율적인 판단에 의한 행동은 미숙합니다.옛 동독국민들이 통일이후 자율경쟁체제에서 갖는 깊은 좌절감의 상당부분도 이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이런 관점에서 상당한 정도이상의 교류성과와 동질감의 회복없는 상태에서의 통일은 남과 북 모두에게 힘겨운 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이런 측면에서 언론은 상대방의 비판에만 치우치지 말고 양측의 동질감찾기 캠페인같은 운동을 벌여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김주임기자=물리적으로 세계의 지리개념은 좁아지고 있지만 민족과 지역공동체의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이런 역작용에 맞서 우리민족도 전세계에 퍼져있는 동질적인 「인적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산업및 외교정책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내년에 출범하는 새로운 모국정부에 보다 치밀하고 적극적인 민족통합연결정책을 기대합니다.

끝으로 이번좌담회를 마련해준 서울신문에 감사드립니다.그리고 22일로 창립 47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의 공익을 앞세우는 제작방향에 감명을 받은 바 많습니다.

앞으로 서울신문이 중국·구소련 각공화국등지에 살고있는 동포들에게 모국소식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전해주는 전령역할을 알차게 해주길 기대합니다.<정리=손성진·이석우기자>
1992-11-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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