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력 과대평가 돼왔다”/러시아 이즈베스티야지 특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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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1-14 00:00
입력 1992-11-14 00:00
◎분규·인플레·과소비속 상실의 시대로/러시아 「대일카드」에 말려들지 않을 것

러시아의 최대일간지인 이즈베스티야지는 옐친방한을 6일 앞둔 12일 서울발로 한·러시아관계에 관한 특집기사를 게재했다.「현실적 비전아래 관계를 발전시키는 한국과 러시아」라는 제하의 이 기사는 양국관계의 발전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양국관계가 당초 기대에 크게 미흡하다고 지적,러시아의 불안한 제반 사정과 함께 한국의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장애요인으로 들었다.

○양국관계 기대 미흡

이 신문은 특히 한국의 경제력에 대해서 그동안 러시아언론이 취해온 입장과 크게 달리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왔다』면서 노사문제·인플레·과소비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논란의 소지가 없는 글은 아니지만 러시아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옐친대통령의 방한이 한차례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끝에 며칠 뒤면 이루어진다.솔직히 말해 지금 한국에서 옐친대통령의 방문은 제일의 관심사가 아니다.중국과의 수교로 중국붐이 일고 있고 새로 선출된 미국대통령에 관심이 쏠려있다.수교초기의 러시아 열기는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한국은 2년전 소련과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러시아와의 「메인 게임」을 끝냈고 이제 더이상 러시아는 한국외교의 제1관심사가 아니다.해체된 소련방은 정치적 비중을 상실했고 경제적으로 절름발이인 나라와의 관계가 자국에 큰 이득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한국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내부진통을 겪고 있다.12월중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고 정치권은 그 준비에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주요후보들은 이념·정강정책 등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도 기질·출신지들을 기준으로 나뉘어 생사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한국경제는 성공과도약의 시기를 지나 이제 불행과 상실의 시기에 들어섰다.따라서 대외문제는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물론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미국·일본 등과는 예외지만 대외관계자체가 관심권밖으로 밀려났다.옐친대통령의 방한은 이런 배경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양국간 상호협력의 새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는 상당히 어렵게 보인다.

러시아는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과시해 일본으로 하여금 대러시아 관계에 유연한 자세를 갖도록 만들겠다는 계산도 갖고있지만 한국은 그런 게임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말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대외문제 관심권 밖

90년 9월 수교 이래 양국관계는 잦은 접촉과 몇개 분야에서의 성공적인 협조관계를 구축했지만 아직 탄탄한 토대를 구축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상상이상으로 복잡미묘하다.러시아는 그동안 한국의 경제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한국에 지나치게 매료돼왔다.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용」으로 묘사했다.

한국이 단시일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한국경제가 바람직한 안정토대위에 들어서기는 멀었다.한국의 슈퍼마켓이나 전시장을 돌아보면 러시아인들은 놀랄 것이다.그러나 한국의 GNP는 일본의 수년치 국가예산에 불과하다.기술적으로 놀랍게 앞선 생산품들을 만들어내지만 한국의 생산라인은 거의 1백% 수입품이다.주요생산품목의 수입부품 비율이 40%에 육박한다.일본은 이 비율이 3% 미만이다.

○기술보다 서비스투자

한국기업들의 경영효율성도 과대평가돼 있다.한국은 엄청난 노사분규를 기록했다.값싼 수출품으로 번 돈을 생산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서비스와 사치품의 수입 등에 소비했다.서비스업종 투자비가 과학·기술연구·현대화 등 투자비의 6배가 넘는다는 것은 흥미롭다.한국이 「제2의 일본」이라는 소리도 이제는 맞지가 않다.지리적·전통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본기업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한국에서 사업하던 6백개의 일본기업중 4백개가 이미 떠났다.사정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경영윤리에 대한 입장차가 주원인이었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성장이 주로 이루어지는 분야는 빌딩건설·국내소비·증권시장·토지및 서비스분야의 가격상승등 비생산분야이다.이것이 소위 거품현상을 낳아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산업수출분야에서의 심한 불균형,족벌체제로 특정지워지는 재벌경제 등의 폐해도 심화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아래 이루어진 시장모델은 한국경제를 무에서 일으켜세웠지만 안정적인 번영을 약속하는 데는 실패했다.한국경제는 왜곡되고 경직되고 위기에 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수년전부터 값싼 노동력,값싼 수출원자재,저금리의 「3저 현상」이 사라지면서 경제의 토대인 수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높은 품질이 아니라 저가를 무기로한 한국상품은 급속히 경쟁력을 잃었다.증시가 두번이나 크게 흔들렸고 기업도산 바람이 불어닥쳤다.

인플레가 급등했고 재정적자와 함께 외채도 증가했다.물론 아주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이 권위주의 경제체제의 틀을 완전히 벗고 진정한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내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1992-11-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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