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의 방랑(외언내언)
수정 1992-11-12 00:00
입력 1992-11-12 00:00
바로 그무렵 그분께 기념시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흔쾌하게 시청탁에 응해주신 그분께 기어드는 목소리로 다음말을 해야했다.『선생님 고료는 5천원밖에 안되는데요오』
그랬더니 그분 말씀이 『고료같은 것이사 상관 없제.누가 고료보고 시쓰는가? 5천원도 많제』하셨다.1편에 만원의 고료는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분의 뜻이고,고료같은 것에 시쓰는일이 좌우되지는 않는 것도 그분의 시인적인 뜻이시기에,당신의 「만원아니면!」하는 선언을 깜빡 잊어버리셨으리라고 생각된다.그분의 기억력없으심에 찬사를 보내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기념시를 실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 가서 러시아말을 연수한 뒤 코카서스지방으로 가 작품생활을 하고 오겠노라고 푸짐한 환송을 받으며 떠나셨던 미당께서 건강을 상하여 미국을 거쳐 돌아오셨다는 소식이다.그분의 자유분방한 행적에 다시한번 미소를 머금게 된다.언약하고 떠난 길이니 뭔가를 보여줬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그보다는 시베리아를 헤매던 우리의 사랑하는 시인의 불행한 소식을 듣게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돌아오시는 편이 백번 낫다.『돌아오시기를 참 잘하셨습니다』
1992-11-1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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