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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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1-10 00:00
입력 1992-11-10 00:00
◎김형직의 사망신화:2/“아사·타사·동사 3대각오 지시” 등 꾸며/사실은 급사… 많은 재산 남긴것엔 함구

김일성은 부친 김형직이 죽기 직전에 「유언」을 받았다고 선전하고 있다.「세기와 더불어」는 이 유언을 김일성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유산」이라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원의 사상,3대 각오,동지획득에관한 사상,두자루의 권총,이것이 내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유산의 전부였다」<주1」

○정신적 유산 강조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김형직은 돈의 힘으로 민족주의단체 정의부의 오동진,강제하,김시우 등과 사귈수 있을 정도로 자산이 있었다.김일성은 물질적 유산을 물려받은 것에는 함구하고 정신적 유산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러한 「정신적유산」중 유언에 관한 부분은 물려받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김형직이 죽은 후인 1926년 6월 이후 김일성이 부친의 유언을 받아 화성의숙에 입학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그는 26년 3월에 화성의숙에 입학하고 부친이 죽은 후에야 무송에 있는 자기 집으로돌아왔다.

26년 6월 입학설은 김일성이 김형직의 유언을 받아 「혁명투쟁」으로 나갔다는 신화를 만들기 위하여 1972년부터 북한에서 주장되어 왔다.그러나 이 주장은 필자에 의하여 그것이 허구임이 논증되었고 최근에 일본의 와다(화전춘수)교수도 자기의 저서에서 6월 입학설을 부인하였다.

와다씨는 또 김형직의 죽음을 「급사」라고 표현했는데 이것도 이명영교수와 필자가 소개한 이도일의 증언을 참작한 후 내린 결론일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어떤 급사였던가에 대한 몇마디의 언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주2>

그러나 하여간 급사라면 김일성은 유언을 받을 틈이 없게 된다.

김일성이 부친으로부터 받은 「유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①3대각오…「혁명가는 어디 가나 항상 3대각오를 가져야 한다.기사,정사,동사,다시 말하여 굶어죽을 각오,맞아죽을 각오,얼어죽을 각오를 가지고 처음 먹은 원대한 뜻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②동지획득에 관한 사상… 「사람은 어려울 때 사귄 벗을 잊지 말아야 한다.집에서는 부모에게 의지하고대문을 나서서는 벗들에게 의지하라고를 하는데 다 뜻이 있는 말이다.생사고락을 같이할 진정한 벗은 사실상 형제보다도 더 가깝다.

○무장투쟁 신격화

「동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좋은 동지를 얻을 수 있다」<주3>

③두자루의 권총… 내가 죽은 다음 이 총이 나오면 재미가 없으니 땅속에 묻었다가 성주가 커서 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도록 하시오」(모친 강반석에게 하였다는 말)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주4>

이 세가지 「유언」중에서 종래 북한이 유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은 「두 자루의 권총」뿐이었다.

「두 자루의 권총」은 부친이 모친에게 남긴 유언이라는 것이므로 가령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김일성이 들은 유언은 아니다.또 이 유언 자체는 권총이 한자루였다가 나중에 두자루로 되고 묻은 장소도 이리저리 변경되는 등 전혀신빙성이 없는 「유언」이다.<주5>

김일성은 자신의 무장투쟁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1964년 무렵부터 이런 「유언」을 선전하여 왔다.

그러나 「3대각오」라든가 「동지획득사상」이라든가 하는 「유언」은 이번에 처음 선 보이게 되었다.

○식량·연료난 가속

이 유언들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원칙에 따라 북한민중이 김일성의 사상을 자기 사상으로 해야 하는 것만큼 1990년대란 김일성통치 전환기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기와 더불어」의 「유산」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유언」들의 앞에 나온다.

「…아버지는 이조시기부터 내려오는 당파싸움에 대해 말씀하면서 당쟁때문에 나라가 망했는데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파쟁을 일삼고 있으니 야단이라고 개탄하였다.…너희들은 반드시 파쟁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단결을 이룩해야 하고 민중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하였다」<주6>

1980년대 이후 북한은 사회주의 우방국가들을 많이 잃고 경제사정이파탄되었다.식량난과 연료난이 가속화되어 굶어죽고 얼어죽는 위험이 항시로 존재하는 세계 극빈국으로 된 것이다.

또 북한은 근간에 자기체제를 반대하는 인사를 굶겨죽이고 때려죽이고 얼려죽이는 인권유린행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러한 김일성은 이번 「유언」에서는 「어려울 때 사귄 벗을 잊지 말라」고 북한 민중에게 자기를 끝까지 따르도록 강요하였다.김일성독재체제를 끝까지 옹호한 결과,굶어주고 맞아죽고 얼어죽어도 그것은 「혁명가」로서의 본령이 아니냐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주해> ①「세기와 더불어1」129면 ②평전 73∼77면 및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화전춘수1992년,일본평범사간 30,31면 ③「세기와 더불어1」126면 ④상동 서 128면 ⑤평전 334·335면 ⑥「세기와 더불어1」125·126면
1992-11-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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