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의 다음 과제/주병철 국제부 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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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10-21 00:00
입력 1992-10-21 00:00
89년6월 북경의 천안문광장에서는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있었다.그리고 그 시위는 총칼로 진압됐다.

그로부터 3년남짓 지난 지금 등소평은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중국 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의 대변혁을 추진할 길을 열었다.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의 「14 전대회」는 개혁·개방정책을 공식화하는 등소평의 잔치무대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등소평은 침묵을 지키며 14전대회가 열리는 동안 딸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등 딴전을 피우다 19일의 중앙위원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의 최고 실력자로 3번이나 실각하고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이번 대회에서 화려한 주연으로 영광스런 찬사를 받긴했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해답에 대해서는 내심 고민했을 그이다.그는 대회 막판에야 나타나 그의 구상을 추진할 신세대의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고민의 일단을 엿볼수 있게 했다.

일찍이 16살때 파리에 유학,두부가게를 하면서 자본주의 이론을 터득했다는 그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으로 개혁의 길을 열었으나 그 이론이 앞으로 얼마만큼 더 설득력을 가질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경제는 현실을 바탕으로,정치체제는 사회주의 원칙고수」라는 그의 중국식사회주의가 언젠가는 한계를 노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체제의 고수를 위한 방편으로 인민을 배불리 먹여 불평불만 없이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인민들이 배가 부르면 요구하게 될 자유와 민주화의 요구에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배부른 인민들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고 외칠때를 그는 생각하고 있을까.그것은 어쩌면 그의 생전이든 사후든간에 제2의 천안문사태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1992-10-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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