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할머니들에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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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8-30 00:00
입력 1992-08-30 00:00
◎소녀시절부터 공사일로 벌어 산땅 6백41평/「나눔의 집」 추진중인 불교인권위에 선뜻 기증/광주 조영자씨 선행

삯바느질과 공사판에서 허드렛일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한 여인이 그동안 틈틈이 모은 돈으로 샀던 6백41평의 땅을 일제때 정신대로 동원됐던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살수 있는 집터로 써달라고 내놓았다.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원당리에 사는 조영자씨(39).

조씨는 29일 정신대 할머니들이 한데 모여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나눔의 집」이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불교인권위원회」에 찾아가 『집앞의 시가 1억원짜리 빈터를 「나눔의 집」부지로 내놓겠다』고 땅문서를 맡겼다.

조씨는 그동안 자주 찾던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안에 있던 「불교인권위원회」에서 지난 봄 우연히 정신대출신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이들을 돕는데 나서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마침내 이날 이땅의 문서를 내놓게 된 것.

조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72)와 함께 삯바느질을 하며 어렵게 생활해오다 『여자로선 힘들지만 목돈도만들고 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단골손님의 권유에 따라 공사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건축기술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막 마친 18살때였다.

그뒤 어깨너머로 배운 설계기술로 직접 한두채의 집을 짓게 되면서 결혼도 잊고 일에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꽤 많은 돈을 모았다.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기사건에 휘말려 지난해 봄 그동안 모아온 15억원에 이르는 부동산을 모두 날리고 광주군으로 내려가 재기를 꿈꾸고 있다.

조씨는 『아직 결혼도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지만 건강한 어머니가 곁에서 지켜주고 있어 언제가 또다시 재기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평생을 한과 고통속에 살아온 정신대할머니들을 친어머니처럼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불교인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여와 그동안 2천만원을 모았다』고 밝히고 『조씨의 정성으로 가장 큰 문제인 부지를 확보했으므로 예상보다 빠른 올 연말쯤부터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이진희기자>
1992-08-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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