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사고로 창조력 길러야/김재설(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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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7-20 00:00
입력 1992-07-20 00:00
창조력은 위대하다.이것이 인간을 짐승과 다르게 만든다.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창조력이 풍부한 인간을 기르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연구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과학자들에게 이 창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암기 위주에 치우쳐 선생의 사상과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되어있는 우리 교육에 그 이유가 크다고 나는 믿는다.

60년대 미국에서 공부 할 때 일이다.그 어렵던 시절,장학금을 받았던 어떻던 어려운 학자금을 마련하여 미국에서 공부하던 우리 유학생들은 그야말로 결사적이었다.매 과목마다 관계되는 책은 거의 뒤져 반복해서 문제를 풀어 보았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것을 당연한 생활방식으로 아는 미국 학생들이 혀를 내두르도록 주말도 없이 공부에 매달렸다.당연히 시험성적이 우수할 수 밖에 없었다.그런데 시간제한 없이 마음껏 사고하여 마음대로 결론을 써내는 Take­HomeExam이라는 것이 문제였다.완전히 창조력과 상상력의 대결이었다.문제를 받고 나도 그 비슷한 문제가 없나 도서관에 뛰어 갔고 거기서 빙그레 웃고 있는 그 출제교수를 만났다.『동양 학생들은 Take­HomeExam때마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더라.너도 역시 예외는 아니구나』 이 말을 듣고 나는 교실에 앉아 자기 아이디어로 스스로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미국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느꼈다.

창조력을 배워질 수 없다.어릴때 부터 자유로운 사고와 끊임없는 자기 이론의 개발로 창조력이 강한 사람이 길러질 뿐이다.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해서 반드시 창조력이 우수한 것도 아니다.지금같이 객관식 위주의 입학시험에 대비해 부단히 문제 푸는 연습을 해 온 학생에게 창조력,독창력은 기대할 수 없다.성적이 좋다 해도 그저 점수를 따는 요령이 좋은 학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 입학 시험 위주의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교육 현실을 모르고 꿈을 꾸고 있다고 비난 받을 것을 잘 알고 있다.그걸 누가 모르냐,네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일류대학 지향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정상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느냐고 답답해 하는 현장 교육자들의 질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우리라고 창조력이 강한 젊은이가 없겠는가.우수한 발명을 했거나 기타 뚜렷한 창조적 재능을 보인 학생에게 점수에 불문하고 원하는 대학에 우선 입학시키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운동을 잘 하는 학생은 그것을 통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그렇다면 과학 기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학생을 시험에서 몇점 모자란다는 이유로 죽인다면 되겠는가.창조력은 시험성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반드시 학과시험이 우수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원칙은 철폐되어야 한다.단선보다는 복선으로 인생을 달릴때 더 살맛이 나지 않을까.아무튼 창조력이 뛰어난 젊은이는 발굴되어야 하고 자극 받아야 하고 그래서 길러져야 한다.그들을 죽여서는 절대로 안된다.<에너지 기술연구소·박사>
1992-07-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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