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언에 『버선목이니 뒤집어 보일수가 있나』라는 말이 있다.아무리 이치에 닿게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때 그 답답함을 호소하는 말이다.다른 옷들은 만듦이 복잡해서 해체하기 전에는 안이 안보이지만 버선은 목만 뒤집으면 속이 나온다.◆정보사토지사기사건이 드디어 「배후」공방전으로 들어섰다.어떤 사람들은 「배후」가 있다고 하고 또 어떤사람들은 『그런게 있을 수가 없다』고 진땀나게 해명을 한다.무작정하고 『있을 터인데 왜 없다고 하느냐』고 윽박지르니까 당하는 사람들은 답답해하면서 버선목이라면 뒤집어라도 보이겠는데 말만 가지고는 믿어주지 않으니 해볼 도리가 없다는 심경인 것같다.◆그러고 보면 우리사회에는 매우 질긴 의심의 체질이 하나 정착했다.모든 사건에서 「배후」의 정체를 찾아내고싶어하는 집요함이다.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일단 「배후」카드부터 던져놓고 기다린다.잘만하면 큰걸 하나 건질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만이다.옛날 양민수탈하던 수령방백들이 지방 토호를 잡아들여 그랬듯이 『네죄를 네가 알렸다』하고 으름장만 놓으면 뭔가 비슷한게 떠올라서 한동안 심심찮을 만한 일이 생기는 것을 재미있어 하며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일종의 역메커니즘인 이런 풍조는 어두웠던 전시대가 남긴 유물이기도 하다.불리하면 권력으로 쓸어 덮어서 투명하게 의혹을 해결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의심의 찌꺼기가 믿는 능력을 소진시켜 버렸다.그 애꿎은 하수인노릇의 분담을 피치못했던 수사기관이,시대가 바뀐 오늘에 이르러서도 도무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피해를 적잖이 입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시대의 탓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일에나 의심의 회로부터 가동시켜 놓고 「배후」사냥하기에만 흥미진진해 하는 우리의 버릇은,일종의 병이현상이다.세월이 되도록이면 덜 걸리면서 나아야 할 아주 안좋은 고질이다.
1992-07-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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