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부양조치 실패… 내리막 주인/6공출범이후의 주가추이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2-06-10 00:00
입력 1992-06-10 00:00
◎3저호황… 89년초 1천P로 폭등/성장둔화 따라 속락… 백약이 무효

3저호황에 따른 국제수지흑자와 88서울올림픽등으로 한때 종합주가지수가 1천을 넘어서기도 했던 증시가 계속 뒷걸음질쳐 88년 수준에 이르고 있다.

9일 현재 종합주가지수는 88년1월12일(5백52.96)이후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6공출범이후인 89년4월1일 종합주가지수는 1천7.07로 증시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그러나 이때를 고비로 주가는 3년여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9일 현재의 종합주가지수는 89년4월1일과 비교,무려 44%나 떨어진 셈이다.

89년4월1일 이후 주가는 경제성장둔화와 소위 단기급등에 따른 거품현상의 후유증이 일어났다.89년6월7일 종합주가지수 9백선이 무너졌다.7월11일에는 증권사에 대한 7천1백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증시부양대책으로 9월1일 종합주가지수는 9백84까지 회복됐으나 그해말의 종가는 9백9였다.주가하락으로 정부가 투신사에 주식매입을 무제한 지원한 「12·12」조치는 투신의 부실화를 가져와 현재 침체증시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90년들어 종합주가지수는 1월부터 무역수지적자가 6억달러에 이르고 있는등 경기위축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4월14일 종합주가지수 8백선이 무너졌으며 4월30일에는 7백선마저 무너졌다.이에따라 정부가 5월8일 증시안정기금 4조원 조성을 비롯한 획기적인 부양대책을 발표,한때 종합주가지수 8백선을 회복하기도 했으나 8월24일에는 종합주가지수 6백선마저 무너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3주후인 9월17일에는 5백66.27로 6공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신용융자에 대한 깡통계좌가 무더기로 쏟아져 증시사상 유례가 없는 「10·10」깡통계좌 일괄정리라는 극약처방이 나왔다.

그해 종합주가지수는 6백96으로 마감했다.



91년은 연초부터 페르시아만 사태로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5월2일의 투신사 경영개선대책,6월13일의 증시안정화대책에도 불구,6월21일에는 종합주가지수 6백선이 무너졌다.

증시개방원년인 92년초에는 외국인의 주식투자및 개방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크게 올라 2월8일에는 6백91.48까지 올랐다.그러나 경기회복이 불투명한데다 상장사의 잇따른부도,통화긴축,정치불안,정부와 재벌과의 대립등으로 주가는 계속 떨어져 마침내 6공 최저치에 이르게 됐다.<곽태헌기자>
1992-06-10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