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빛같은 공직자(사설)
수정 1992-06-04 00:00
입력 1992-06-04 00:00
『어제 저녁 차관보로부터 부여받은 숙제와 아침에 국장한테 지시받은 업무를 내일 아침까지는 처리해야 되고,또상오11시에는 이미 소집해놓은 관계기관의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교환을 하여야 하며,하오3시부터 개최될 경제장관회의에 상정할 안건도 마무리지어야 한다.…』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업무속에서 「그날」 퇴근해서 「그날」 출근하는 일꾼들이 많아 집안 식구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어려운지경이며 어떤 중년의 가장은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서 수위의 오해를 산 일도 있다는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이런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신기하다는 뜻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 공직자들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음으로써 오늘의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발전된다는 안도감을 주어 희망을 느끼게 한다.우리에게 신선한 신뢰를 회복시켜 주는 이런 공무원의 세계가 사실은 전체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이런 공무원들에 의해 정부청사의 불이 밤새도록 꺼지지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기쁨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크게 위로가 된다.이 책이 나오자마자 주위의 동료들이 『바로 내 이야기다.우선 집안식구부터 보여주자』며 앞다퉈 사가는 바람에 초판이 3일만에 동이 났고 곧 재판에 들어갔다고 한다.그렇다는 것은 많은 공직자가 실상은 이런 경험에 공감하는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그점이 또한 우리에게 신뢰감을 굳혀준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일터인데 우리 사회가 너무 황폐하여 그런 믿음의 기능을 상실해 왔다.공직에 있는사람은 그길을 인생의 긴 장도로 선택한 사람들이다.눈앞의 단순한 욕심이나 유혹에 흔들리면 그만큼 수명이 짧아지고 거둘것도 없어진다.사회란 꼭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아서 사람들의 행동을 어디엔가 기억해두었다가 반드시 반영하는 마술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더구나 이도에 들어선 사람의 행적은 차곡차곡 쌓여서 쌓인 만큼의 보상을 해주게 마련이라는 것을,그길에 들어서 10년만 되면 알게 해준다.
이 책의 저자도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침체되었을 때는 침체의 의미가 있고 좌천되었을 때는 좌천의 「기쁨」이 있음을 터득하고 있는 슬기가 높이 살만하다.이 책이 현장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귀기울였으면 하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맹목적일만큼 가혹한 일반의시선도 반성을 하도록 자각하게 한다.이 글들을 통해 공직자에 대한 우리의 눈을 새롭게 개안하게 했다는 사실이 커다란 수확이다.뜻이 있는 젊은 공직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1992-06-0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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