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진 대입/불경기/선거/악재겹쳐 출판계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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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3-23 00:00
입력 1992-03-23 00:00
◎1·4분기 매출액 예년비해 30%이상 감소/80년대이후 최대위기… 영세업자 도산 우려

우리나라의 출판업계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조정 또는 재편국면을 맞고 있다.최근 시중의 서점에서 책이 너무 안 팔리고 있어 출판계가 80년대 중반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출판계는 이 조정국면이 단기적인 것이 되더라도 가까운 시일내에 많은 출판사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부산시 서점조합 박재오회장(부일서점 대표)은 『예년에는 서점마다 1·4분기 수입으로 1년을 버텼으나 올해는 개점 16년만의 최대 불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또 광주시 서점조합의 최재창회장(해광서점 대표)도 『특히 매출액의 70%를 중고교생들의 학습참고서에 의존하는 지방 서점들이 고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서적상들은 1∼3월에 겨울방학과 봄방학,새 학기가 잇달아 있어 이 시기를 출판가의 대목으로 여겨왔으나 올해는 예년의 30%이상 매출이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서점의 불황은 출판사의 불황으로 옮겨붙고 있다.많은 영세한 출판사들은 아예 새 책을 낼 엄두도 못내는 형편.그래도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불황타개책으로 5∼10권으로 된 대작(시리즈물)을 내고 신문·방송 매체에 무리한 광고를 싣고 있다.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출간된 대작은 「소설 동의보감」「연개소문」「소설 토정비결」등 60여종에 이른다.또 많은 출판사들은 화장품과 제약업계가 5%내외의 광고비를 쓰는데 비해 과도하다고 할 수 있는 10∼20%의 광고비를 출혈하고 있다.

출판가가 이와같이 고전을 겪고 있는 이유에 대해 출판 관계자들은 ▲선거 ▲불경기 ▲대학입학시험의 평이한 출제 등을 꼽고 있다.제14대 총선에 대한 관심과 경제전반을 뒤덮고 있는 불경기는 독자들로부터 일반서적을 읽을 여유를 빼앗고 있으며 대입시험의 평이한 출제 여파로 중고교용 학습참고서의 판매량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특히 지방의 군소 서점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학습참고서의 경우 학교 교사들이 잡음을 이유로 일괄적인 채택을 꺼리고 있는데다 교과서가 개편된 지가 오래돼 헌참고서를 물려쓰기 때문에 고전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의중심가에 위치한 일부 대형서점들은 오히려 큰 매출신장을 보이고 있어 이채.종로서적과 을지문고·신촌문고·태평서적센터의 경우 국내 최대서점인 교보문고가 개보수를 이유로 문을 닫는 바람에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0∼50% 매출이 늘었다는 것.이 서점들은 교보문고가 2천여평의 매장을 갖춰 다시 문을 여는 4월초에 대비,다각적인 판매전략을 세우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현재 국내 출판사의 수는 6천여개에 이르러 크게 난립한 상태.출판업은 출판기법만 알고 있으면 누구나 소자본으로 뛰어들 수 있는 업종이란 인식 때문에 날마다 수많은 출판사가 생겨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출판사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현재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최소의 경비는 8백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볼 때에도 출판사의 수가 너무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90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사수가 5천7백4개인데 비해 일본 4천3백9개,독일 2천73개,중국 4백91개로 나타났다.출판업계에서는 인구비율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2천여개가 적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판사의 난립은 내용이나 질이 터무니 없이 떨어지는 책이 시중에 범람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로 지적되고 있다.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출판계의 불황이 영리만을 목적으로 독자들에 영합하는 「일회용」 책을 내는 출판사들을 정리하는 기회가 됨으로써 독자들이 책이란 좋은 것이란 인식을 다시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윤석규기자>
1992-03-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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