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수준 향상… 곡 중복은 피해야”/92교향곡 축제를 듣고
수정 1992-03-18 00:00
입력 1992-03-18 00:00
금년에는 전국의 18개 악단이 불꽃튀는 열전을 벌였는데 양적 팽창에 비해 내용(연주곡)은 빈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휘자들의 음악만듦은 구태의연했으나 악단들은 질적으로 발전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식상한 것은 그야말로 지휘자들의 레퍼토리 빈곤과 매너리즘을 느끼게 한 음악메뉴로 연주곡들은 작년보다 오히려 고전과 낭만음악에 치우쳐 있었다. 심지어 재현예술의 의미파악도 제대로 안된 지휘자도 있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대체로 지방악단의 문제는 금관악기군(호른,트럼펫,트롬본)의 퇴화로 인한 협조적 방해기능이었다. 그러나 현과 목관악기군은 비교적 음이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교향악단의 음악이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는지휘자의 능력과 함께 각 악기의 정확한 음의 융합과 승화된 표현에 달려있기에 이의 해결이 시급하다.
특이한 것은 같은 악단이라도 외국객원지휘자가 음악을 만들면 음악이 되고 국내지휘자가 만들며 설익음이 느껴지는 것으로 지휘자의 능력문제도 있지만 단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지휘철학이나 연주철학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는 기대했던 악단(수원·부천시향,KBS향)이 기대치 이하였던 반면 상상외로 지방악단(전주·부산·마산·광주시향)들이 설득력있는 좋은 연주를 해주었다.
세부적으로는 레퍼토리선정에 있어 「서곡협주곡교향곡」하는 식의 고정관념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연주메뉴가 되어야 할 것이고 악단간의 연주곡중복(스트라빈스키 「불새」)도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18개 악단이 연주한 55곡중 국내창작곡이 1곡뿐인 것은 교향악축제의 자존심 상실이다. 27명이나 되는 협연자들은 그 얼굴이 그얼굴이라 신선감은 없었으나 비중있는 연주자들이 대거 참가해 좋은 음악만듦은 되었다.
끝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전국의 모든 악단들이 개성상실로 인해 획일화되지말고 각 지역특성에 맞는 고유샐깔을 만들어가 「자기고장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야만 교향악축제의 뜻이 있다고 본다.
이제 악단들은 감각적인 연주행위보다 지적인 해석미학이 깔린 음악을 보여줄 때가 됐다. 음악은 고도의 기술없이 의욕이나 배짱만으로 되는 예술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김규현 작곡가·음악평론가>
1992-03-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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