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당/외국의 시각/독일인들은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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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3-12 00:00
입력 1992-03-12 00:00
◎“경제의 「마이스터정」으로 돌아가야”/재벌이 당 만들고 정치하는건 상상 못할일

사회 각 분야에서 장인정신으로 일컬어지는 「마이스터」제도가 확립된 독일에서는 재벌이 당을 만들고 정치판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다.자원과 자본·기술이 거의 없었던 불모지에서 근면과 신용만을 밑천으로 신흥공업국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현대를 키워온 정주영국민당대표는 독일에서 경영분야의 「마이스터 정」으로 꼽히고있다.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가 운영되고 있는 독일에서는 70대후반의 「마이스터 정」이 어느날 정치인으로 변신한것이 이상스럽게 보일 뿐이다.바그너교수(베를린자유대학)는 『독일정치구조는 정강과 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재벌이 재력을 가지고 당을 만들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체제가 상향구조여서 당내에서 경선과 평가를 받아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당지도자가 되기까지는 오랜 정치경륜을 쌓아야한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잘 알려진 정치인들은 이미 20대 전후에 자신의 이상과 사상에 따라 정당에 가입,정치활동을 해왔다.정치인이라해서 모두 금배지가 목적은 아니며 평생 지역당원으로 정치적 이상을 당활동을 통해 구현시키는 정치마이스터로 만족하는 예가 대부분이다.특정당의 소속원으로 당과 지역사회에 기여해 지역당과 유권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주의회·주정부로 진출하고 다시 능력을 평가받게 되면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 정치인의 상식화된 정도이다.

10년째 내각을 이끌고 있는 콜총리는 16살때인 46년 독일청소년연맹에 가입해 29살때 기민당(CDU)원으로 라인란트 팔즈주의원에 피선,46년의 정치경력을 지니고있으며 구동독 할레출신으로 18년동안 외무를 담당하고있는 겐셔장관은 패전후 18살때 소점령지역의 자민당에 입당했으나 당이 소련군에 의해 해산되자 서독으로 이주해 자유당(FDP)지역당원으로 활동,정치경력 47년의 마이스터이다.브란트전총리역시 17살때 사회당(SPD)에 입당했으나 3년후에 나치가 정권을 잡자 33년 노르웨이로 망명,스칸디나비아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종전후 독일로 돌아와 49년 처음으로 연방의원이 되는등 62년동안 정치에 몸을 담고있다.거꾸로 기업인들도 일찍 경영 수업을 쌓기시작해 경영인으로 은퇴하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고있다.

물론 정치 마이스터제도가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한국정치풍토에서 특정인에게만 장인정신을 요구할 수는 없을것이다.재독교민들도 그가 존경받는 기업인 「정회장」으로 활동 하면서 어려운 우리 경제의 기둥이 되고 혼탁한 정치풍토에 소금의 역할을 하며 추앙받는 원로로 남아있기를 바라고있다.격변기의 어려움을 딛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현대는 사회의 것,국가의 것이며 경영자는 국가·사회로부터 기업을 수탁해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모두가 동감하고있는 것도 사실이다.한결같이 기업인의 외길을 걸어온 정대표는 누가 뭐래도 경제인이지 정치인일 수는 없다.기업은 기업가가 확실하고 착실하게 다지고 이끌어 어떤 정치적 변동에도 휘말려들지 말도록 해야한다는 교훈을 독일의 예가 잘말해주고 있다.정치는 정치가가 할 몫이란 것이다.

고국에서 벌어지고있는 오늘의 정치상황을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있는 교민들은 『정변때마다 소외계층들을 위로하려고 기업인에게 죄명을 씌우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는 「정회장」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그가 정치에서만은 초연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해 8월 쏘나타와 포니등 국산자동차가 독일에 상륙,「빌트샤프츠 보헤」지등 경제지들은 앞다투어 한국경제의 잠재력과 「마이스터 정」에 관한 특집을 다루어 교민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되새기게 했었다.그러나 그 직후 정회장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지난 1월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로 물량공급이 제대로 안되고있다.전력투구해도 냉엄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가 힘든데 어쩌자고 이같은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까울 뿐이다.현대기업과 한국경제는 「마이스터 정」을 아쉬워 하고 있다는 안팎의 관심에 정대표는 겸허한 마음으로 귀 기울일 때이다.<베를린=이기백특파원>
1992-03-1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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