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본 일본 일본인:1/김문환 재일 서울대교수
수정 1992-02-25 00:00
입력 1992-02-25 00:00
우리의 일본이해는 「현재」보다 「과거」에 매달려 있는 편이다.또한 정치·경제에 편중된 대일 접근으로 일본의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극히 빈약하다.그러나 오늘의 일본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다.오늘의 일본문화를 살펴보고 극일의 길을 모색하는 김문환교수(서울대·미학)의 「문화로 본 일본·일본인」을 연재한다.김교수는 일본 국제교류기금 초청을 받아 일본에 체류중이다.<편집자주>
◎사회교육센터 공민관 전국 1만7천곳/해정단위마다 설치… 한해 2억명 이용/전후 민주정신 함양·국가재건 뒷받침/예술행사등 문화사업의 무대로 활용
잠시 서울에 들른 기회에 만난 어느 출판사 사장과의 대화중 한 대목이 아직도 기억된다.한때 출판계를 주도하다시피한 이른바 이념서적 내지 사회과학도서의 독자들을 어떻게 되찾느냐에 출판계의 장래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공감이 갈 만한 의견이다.그러기에 필자는 비전문가의 입장에서나마 대안이랄까를 이야기해 보았다.시제로서는 미래,영역으로서는 참여민주주의,그리고 지역으로서는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행동전략이 출판업계의 장래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그의 동감표시가 단순한 인사일 수도 있겠지만,적어도 필자로서는 제법 여러가지를 고려해본 대안인 셈이다.필자가 일본의 문화정책을 연구해 보겠노라는 명목으로 일본국제교류기금에다 협조를 요청하고 또 그 초청에 응해 이곳에 와 있는 것도 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그 비슷한 일종의 위기의식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야자와 일본총리가 다녀간 후 일본과 일본인이 국민적인 화제가 된 줄 안다.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나마의 지식도 지나치게 과거적이거나 아니면 자의적이지 않을까? 물론 미래적인 안목을 지닌다고 해도 하버마스의 최근 책명처럼 「과거는 미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결코 과거를 무시할 수 없다.양국의 문화적 연원도 밝혀져야 하고,최근세사의 침탈도 폭로되어야 한다.그러나 그 못지않게 「지금」역시 일본은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것은 단순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대중문화적 붐의 형태만은 아니다.
불과 5개월의 생활경험을 가지고 감히 어찌 오늘의 일본을 아는 체 할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느껴지는 벽은 필자로 하여금 무력감에 빠져들게도 한다.그러나 비록 갈대구멍을 통해서나마 보게 된 일본의 문화정책적 단면들을 생활현장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으로 인해 감히 이 연재를 꿈꾸고 본 것이다.좀더 솔직히 말한다면,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쳐본 우리의 모습이 궁금했다고 할 수도 있다.청년시절에 써본 시답지 않은 글귀 속에서 『길을 떠날 때마다,새로운 만남을 기다리지만,만나는 것은 언제나 차창에 비친 제 얼굴이다』라고 적어본 그대로이다.
문화정책의 틀만 해도 그렇다.필자 자신도 의견을 제출해 보았지만 거의 참고가 되지 않은 채 짜여진 대한민국의 문화부 편제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일본의 문화청을 닮고 있다.좀 심하게 말한다면 「과」를 「국」으로 상향조정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나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일본의 경우 그것은 문부성의 외청으로서 장관은 형식상으로나마 문부성대신 밑에 있다.
1968년 『문화의 진흥및 보급과 함께 문화재의 보존및 활용을 도모함과 동시에 종교에 관한 국가의 행정사무를 행하는 것』을 임무로 설치된 문화청은 문부성의 생애학습이나 사회교육 그리고 건강교육과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좁은 의미의 문화행정으로 만족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그것이 적어도 「청」이 아니고 교육부와 동등한 「부」가 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는 조직과 임무가 부여되어야 한다.
학교교육만으로도 허덕이는 교육부로부터 예컨대 생애학습과 연관되는 사회교육분야를 공공도서관처럼 과감하게 문화부로 옮겨 놓는다든지,날로 그 중요성이 강화되는 문화매체로서의 방송을 문화부와 연계시키지 않고서는 균형있는 문화정책 내지 문화행정은 꿈꾸기 어렵지 않을까?
사회교육만 해도 그렇다.일본은 특히 19 46년 이래 「공민관」이라는 시설을 중심으로 사회교육이 국민생활 속에뿌리를 내리고 있다.물론 대정(대정)시대에도 그와 같은 명칭을 사용한 시설이 하나 있긴 했어도 본격적으로는 전후에 민주주의적 가치관의 함양과 연관하여 국가재건의 거점으로서 크게 활용되어 1990년 현재 전국 3천2백75 시구정촌 총수의 92%인 2천9백82 시정촌에 1만7천4백40개의 공민관이 설치되어 있다.또한 연간 이용자가 1억9천5백36만9천4백28명으로 집계되어 있는데 한 공민관 당 이른바 좁은 의미의 문화사업이 26.5%를 점유하고 있다.우리 문화부도 세계적인 조류에 따라 적어도 목표로서는 국민문화향수권의 신장을 내세웠지만 내용적으로는 예술행사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지라 공민관을 비롯한 일본의 사회교육체제가 우선 필자의 시선을 잡아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문화행정의 틀도 틀이지만 그 실질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문화정책이란 자칫 장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1992-02-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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