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들,우리 딸들/이승렬 본사 수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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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2-22 00:00
입력 1992-02-22 00:00
미국의 세계적 팝그룹인「뉴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공연에서 10대 소녀관객들이 서로 무대에 가까이 가려고 밀고 밀리다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여고생 1명이 사망하고 40여명이 다치는 국내공연사상 최악의 불상사가 발생,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뉴키즈」공연이 빚은 「광란의 밤」에 대해 도하 언론들은 일제히 『우리 사회와 학교,또는 가정 모두가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철부지 10대들의 집단히스테리라고도 하고,가치관을 상실한 청소년층에게 성인사회의 향락문화가 복합작용을 일으킨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으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공유할 문화적공간이 없는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들 모두 일이가 있는 꾸짖음에 더하여 필자는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어른들 탓이라는 의견에 공감한다.거창하게 학문적인 접근을 하지 않더라도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제력과 인내심,그리고 질서의식을 심어 주지 못한 부모들과 선생님의 죄가 크다고 본다.또한 좌석도 없는 마루바닥 앞쪽을 S석이라 이름붙여 거액을 받고 표를 판 업자들의 얄팍한 상술이 밉다.앞사람이 일어서니 뒤쪽에 앉은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따라서 일어서게 되고,이어 우르르 몰려 나오는 인파에 깔려 버린 어처구니 없는 참변에 전혀 대비하지 못한 자초지종을 들으면서 참으로 얼굴 붉어짐을 어찌할수가 없다.「뉴키즈」의 공연 때면 세계 어디서고 이와 비슷한 소란이 일어나며 91년 11월 베를린공연때도 어린이 1명이 사망하고 9백49명의 청소년이 다치는 사고를 낸적이 있다는 사실을 왜 주최측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보다 특별히 질서의식이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10대의 순수함이나 때묻지 않은 정열은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지금은 30대후반의 어머니가 되었을 사람들도 고만한 나이때엔 외국의 유명가수 공연에서 괴성을 지르고 심지어는 속옷까지 벗어 던졌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많으리라.그러나 지금 그들은 어떤가?

우리의 아이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우리 어른들이 나쁜 것이다.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성인들이 참으로 겸허하게 옷깃을 여며야 할때가 아닌가?
1992-02-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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