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한 상혼/김재순 사회1부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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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2-19 00:00
입력 1992-02-19 00:00
『외국가수를 보고 저토록 미쳐 날뛰는 아이들속에 내자식도 끼어 있다니…』
『아무리 흥행수입을 위한다지만 너무 한것 아닙니까』
미국의 5인조 팝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이 열린 17일 저녁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10대들의 광란으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흥행수입만을 노린 상혼의 희생양이 된 청소년들은 학교수업도 잊고 이른 아침부터 책가방대신 갖가지 플래카드와 망원경·카메라를 들고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최측은 더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대주변에는 관객들을 앉히지 않는다는 관례마저 깨뜨리고 정원인 1만3천명을 훨씬 넘는 1만7천여명을 입장시켜 대혼잡을 가중시켰다.
요란한 굉음과 불빛을 앞세우고 공연이 시작되자 「악」하는 괴성과 함께 그룹멤버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는 여학생들이 꽃과 선물·방석 등을 던지며 앞으로 앞으로 몰려나갔다.
무대앞쪽에 앉아있던 여학생 1백여명이 이들에게 깔려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는등 부상자가 속출했다.그러나 주최측인 서라벌레코드사는 서투른 아르바이트학생 20여명을 시켜 다친 학생들을 임시진료실로 옮기는 데 그쳤다.
아무런 사고 예방대책도 없이 좌석도 없는 마루를 오히려 특별석으로 둔갑시킨 그릇된 상혼이 대형사고를 유도한 셈이다.
사고에 이어 공연이 중단되고 병원 앰뷸런스 20여대가 부상자들을 태워 날랐다.
한데도 주최측은 사고처리와 사태의 수습에 주력하기보다는흥행만을 생각한듯 남아있는 청소년들에게 『공연이 곧 다시 시작될 것』이라며 3시간이 넘게 붙잡아 두었다.
공연장 밖에는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2백여명의 학부모들이 공연의 중단과 환불을 요구하며 책임자를 찾았으나 주최측이 마련한 상황실에는 귀청을 찢는 비명을 토해내는 여학생들과 아르바이트학생 5∼6명만 보이고 정작 주최측은 아무도 없었다.
하오11시35분쯤 재개된 공연이 끝난뒤 남은 것은 어지러운 쓰레기와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10대들의 아우성 뿐이었다.
1992-02-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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