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 「납치산업」 번져 골치/필리핀(움직이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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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2-03 00:00
입력 1992-02-03 00:00
◎방지특수부대 설치했어도 계속 증가/작년 유괴 50건… 55억원 챙겨/미 실업인도 피랍… 군­경·범인 결탁설도/워싱턴선 특별수사팀 투입… 직접 추적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필리핀에서 「납치산업」이란 반 인륜적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에르네스토 마세다 상원의원은 의회발언을 통해 『지난 3년간 증가일로의 납치산업은 이제 납치및 유괴가 수억 페소짜리의 번창하는 산업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상원 국방위원장인 마세다의원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 91년 한햇동안 필리핀에서는 50건의 납치사건이 발생했으며 지불된 몸값은 미화로 7백50만달러(약 55억원)에 달하고 있다.

많은 납치사건 가운데 특히 2건의 필리핀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9월 필리핀의 한 부잣집 아들인 17세의 로페즈란 학생이 등교길에 납치됐다.로페즈는 1개월후 시체로 발견됐는데,이 사건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코라손 아키노대통령으로 하여금 납치방지 특수부대를 설치하도록 만들었다.

특수부대 신설로 그동안 연쇄적으로발생하던 납치사건이 한동안 뜸해져 효과를 보는 듯 했으나 4개월후인 지난달 납치사건이 또다시 발생하고야 말았다.

특수부대의 활동으로 납치산업의 맥이 끊긴 줄 알고 안심하고 있던 정부나 국민 모두 허를 찔린 셈이다.신년 첫달에 터진 이번 납치사건은 대형급으로,대외적인 파장까지 몰고 왔다.납치된 인물은 미국인으로 미 유수기업중의 하나인 유노칼의 자회사인 필리핀지오터멀사의 부사장 마이클 반스씨였다.

반스씨는 마닐라의 번화가에서 3명의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다.경찰 발표는 아니나 마세다 상원의원에 따르면 반스씨의 납치범들은 5천만페소(약 2백만달러)의 몸값을 요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스씨의 납치는 미국중견기업인이란 배경때문에 세계주요 통신이 후속관련 기사를 심심찮게 보도하고 있는데 이 덕분에 필리핀 전체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당하고 있다.우선 납치산업 번창·성행이란 필리핀의 치부가 드러났고 더구나 「납치범과 군경간의 결탁」설이 꼬리를 물고 나돌면서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버린 것이다.

필리핀경찰은 반스의 납치범들에 대해 아직까지 신원파악마저 하지 못한 채 정치적 동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대신 반스씨의 납치사건에 대응하는 필리핀주재 미대사관측의 태도는 보다 시사적이다.

프랑크 위스너 미대사는 대사관에 통상적으로 자국의 사업요원들이 배속해 있고 필리핀경찰의 「조속해결」언약이 강력한데도 불구,본국에 특별 수사요원급파를 요청해 즉시 보충받은 것이다.특파인원이 몇명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연방수사국(FBI)을 비롯,최고 수사기관 소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대사관이 주재지 경찰력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수사한 저간의 사정은 『빈번한 납치사건에 전직 혹은 현직의 군인·경찰이 관련되어 있다』는 한 외국인 기업고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마세다의원 역시 『충격적인 것은 일반인들이 군인,혹은 경찰이 납치조직에 가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털어놓는다.

이같은 지적처럼 대부분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이 납치에 관련되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고 있다.

아키노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경찰의 날을 맞아 납치범죄 완전소탕을 재삼 강조하고 10만 경찰력의 분전을 독려했다.그러나 반스사건이 조기해결될 기미가 없자 위스너영대사는 반스납치로 외국인들의 필피핀투자 의욕이 크게 저하되고 있음을 필리핀당국에 상기시키고 있다.투자는 둘째치고 필리핀 여행 자제를 내국인에게 충고하는 현지 대사관들의 동향도 파악된다.

또 일부 보도에 의하면 납치범들의 주요 대상이 되어왔던 부유한 화교상인들중 상당수가 필리핀을 떠나 안전한 호주·캐나다로 이민간 것으로 알려졌다.<김재영기자>
1992-02-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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