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하는 대통령부인(송정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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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1-17 00:00
입력 1992-01-17 00:00
그러나 이 두번째 필름은 우리의 인간적 연민을 자극한다.졸지에 쓰러지며 식탁앞에서 먹은 것을 토해내는 남편이 아내에게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미국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위의 지아비라도 이럴때 반사적으로 냅킨을 집어들고 닦아줘야 할 사람은 늙은 아내이고 아내만이 이 부끄러움에서 남편을 쓸어덮으려고 안간힘을 다할 수 있다.
이 장면은 문득 한기억을 되살려 주었다.8·15경축식장에서 느닷없는 흉탄에 쓰러진 아내 육영수여사가 들쳐져 나간뒤 참담한 분위기로 단상을 떠나던 박정희대통령은 자신의 발길 언저리에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던 흰고무신 한짝을 발견한다.그 흰고무신 한짝을 그는 몸을 구부려 얼른 집어들었다.그것은 성한 정신으로라면 천하없어도 그런 모습을 남길리 없는 지어미 육영수의 것이었다.
비록 대통령이라도,가부장의 권위가 쩌렁쩌렁한 이땅의 정상이라도,아내의 피치못할 부끄러움을 솔선해서 수습하는 것은 지아비된 사람의 본능적 몸가짐이었을 것이다.고통과 연민이 혼합된채 뇌리에 새겨져서 오래 잊히지 않던 그 모습이 냅킨으로 남편의 토한 물건을 수습하는 부시부인에게서 되살아났다.
방일중인 부시대통령이 만찬자리에서 쓰러졌다는 뉴스는 우리로 하여금 저녁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릴만큼 놀라운 것이었다.그러나 그 「첫번째 화면」은 조금 의아스러웠다.잠깐동안 쓰러진 부시의 모습과 당황하게 추스르는 주변의 모습이 스쳐간 뒤 이내 부시대통령은 일어나 자기발로 걸어나가는 듯했고 그리고는 골격이 크고 백발이 드세보이는 미국대통령부인 바바라 부시가 당당히 일어서서 연설을 하고 「농담을 하는」장면이 비쳤다.
남편은 쓰러졌다가 황망히 응급한 처치를 받으러 퇴장했는데 그 아내인 아녀자가 남아 그 자리에서 「연설」이나 하고 「농담」이나 했다는 구도의 화면은 부자연스럽고 의아했었다.이렇게 의아스런 장면을 놓고 일본측은 「의연한 퍼스트레이디」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을 하고 있었다.
두번째 밝혀진 필름을 보고서야 이런 의아스러움은 풀릴수 있었다.위기의 순간,오래 해로해온 조강지처는 기민하고 능숙하게 남편의 곤혹을 수습했고 남편이 나간뒤 「빈자리」를 최소화시키는 역할을 바바라 부시는 대통령부인의 의무로 해낸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 기지에 찬 농담은 고답하게 다목적 과녁을 향해 쏜 것이었다.부군의 졸도는 노령의 한계나 근원적인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테니스에서 진 오기탓정도였고 그것은 또 한조를 이루었던 「집안식구」인 주일미대사의 서툰 테니스솜씨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 남편은 지는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함축적인가.이겨야 할 가장 큰 승부(대통령 재선)를 눈앞에 둔 남편의 「지지않을 결의」를 당당하게 피력해버린 「농담」이다.경국의 예를 갖추어 모셔놓은 「대국손님」이 대접하던 음식상에서 구토를 일으키고 쓰러졌다는 것은 「독미」를 의심받을만큼 곤란한 일이다.송구스러워 당황한 일본을 향해 「우리집안 식구탓」을 자인해준 외교적 절묘함과 「질줄 모르는 이미지」를 심으려고 한 탁월한 솜씨가 이 「농담」에는 담겨 있다.백악관의 퍼스트레이디라면 이만은 해야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대통령부인노릇」을 우리도 수용할 수 있을까.한국대통령의 부인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응을 했다면 어땠을까.「하늘같은 지아비」가,게다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대통령남편이 졸도했다가 퇴장을 했는데 놀랍고 창황하여 따라나가 그 곁을 지켜야지 어딜 나서서 「연설」은 다 무엇이며 「농담」은 또 무슨 해괴한 짓인가라고 구설수가 낭자했을지도 모른다.
문화가 다르고 풍속이 다르므로 비교하거나 불평할 일도 아닐지 모른다.그렇기는 하지만 바바라 부시가 보여준 그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는 분명히 「능력」이었다.대통령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의무」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MBCTV는 최근 명앵커출신의 이득렬씨와 회견하는 영국의 대처 전수상모습을 보여주었다.그가 재임중에 얼마나 탁월한 재상이었는지를 소급해서실증해준 회견이었다.수입이 가능한 것이라면 이런 공직자 하나쯤 초빙하고 싶을만큼 탐이 나는 인물이었다.
역할이 주어지고 그 역할의 수행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람을 탁마하고 성장하게 한다.인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붓글씨로 「한미우호」를 쓰도록 익혀오고 위기에 직면하면 전광석화같은 순발력으로 도양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퍼스트 레이디도 그렇게 단련되어 이뤄졌을 것이다.조금만 겉으로 두드러지면 악의적 험담으로 시까스르고,한발자욱 뒤에서 숨을 죽이고 따라다니는 「미덕」을 강요받는 아내들에게서는 그런 능력은 잘 발휘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학력여성의 양산체제에 들어간지는 오래인데 능력을 발휘하고싶은 욕구는 억압된채 내숭스런 일상을 살아야 함으로 그 기운이 온통 치맛바람으로 잘못 분출되는 것 같은 우리에 비하면 「농담하는 대통령부인」은 통쾌해 보였다.
1992-01-1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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