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강권통치에 배곯는 이라크/국민 인질삼아 유엔제재 해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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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10-14 00:00
입력 1991-10-14 00:00
걸프전이 끝난지 6개월이 넘었는데도 이라크 국민들은 전후복구는 커녕 갈수록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이라크인들의 굶주림은 단순히 전쟁에서 패한 나라가 감수해야 하는 전후의 고통이 아니다. 무모하게 걸프전을 일으켰다가 참패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정권유지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밀어 붙이고 있는 정략에 의한 것이다. 후세인이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인들의 굶주림은 당장이라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카드로 삼기 위해 국민들의 기아를 볼모로 삼아 오히려 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이 유엔과 합의한 걸프전 종전안을 이행할 경우 이라크는 본격적인 전후복구는 어렵더라도 국민들이 나날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세인은 종전안의 수행이나 종전후 유엔이 이라크에 대해 내린 결정을 그대로 승복하면 결국 자신이 몰락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이라크의 경제난이다 국민들의 생활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제협약이나 결정을 위반하기 일쑤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1천8백만 이라크 국민들의 기아를 볼모로 내세워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유엔이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를 자진 철회하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쿠웨이트를 전격 침략한 대가로 유엔의 경제봉쇄 조치를 15개월째 받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생활상은 일부 소수계층을 제외하곤 처참한 상태에 놓여있다. 식량의 대부분을 비롯한 생필품의 태반을 외국에서 수입해 오면서 하루 2백만배럴의 석유를 팔아 수입물품 대금을 결제해왔던 이라크로선 석유의 해외판로를 막는 경제봉쇄 조치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정부는 국민 누구나 해외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물품 구입원인 석유가 팔리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국민들이 외국물건을 살 돈이 있을 턱이 없다. 후세인이 벌인 이란과의 8년전쟁을 포함,11년동안 전쟁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이라크인들은 걸프전 종전을 맞긴 했지만 돈이 달린 정부가 그동안 석유판매대금으로 지원해오던 기본식품 보조금을 대폭 축소하는 바람에 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식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빵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수도 바그다드 거리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구걸하는 젊은 어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기초의약품이 크게 부족하고 환경이 극도로 나빠져 병사자가 급증한 가운데 강권통치로 극소수에 그쳤던 범죄가 크게 늘어 강도사건만해도 인구 5백만명의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에 30여건씩 발생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되자 후세인은 유엔이 경제봉쇄 해제의 조건으로 내건 종전안 수행에 착수할 생각은 않고 이라크인들의 고난을 구실삼아 경제봉쇄를 무조건 해제해줄 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선 종전안이행 입장을 고수하던 유엔도 이라크인들의 참상을 보다 못해 드디어 지난달 20일 이라크에 앞으로 6개월 동안 16억달러 어치의 석유를 외국에 팔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이라크가 석유를 판매하되 판매대금을 전부를 유엔이 관리,후세인이나 이라크정부가 다른 곳에 유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고 핵사찰에 협조할 것을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같이 모욕적인 주권침해를 받느니 보다 차라리 굶겠다』며 이라크인들의 곤궁과 기아를 해결해줄 유엔 허용안을 퇴짜 놓고 말았다.<김재영기자>
1991-10-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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