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유엔대사는 말한다(유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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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9-17 00:00
입력 1991-09-17 00:00
17일(한국시간 18일 새벽)은 우리외교사에서 매우 뜻깊은 날이다.꿈에도 그리던 남북한유엔동시가입이 유엔회원국들의 만장일치속에 실현되기 때문이다.남북한유엔가입은 남북한관계는 물론 동북아지역의 지각변동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런 점에서 그동안 유엔가입을 위해 현지에서 동분서주해왔던 전직유엔대사들의 감회는 남다르리라 생각된다.이들의 소감을 간추려본다.
▷한표욱씨<5대 71.7∼73.5>◁
그동안 유엔외교에서 우리나라가 정식회원국이 아니라는데 깊은 공허감을 느낄 정도로 유엔가입은 우리외교의 최대현안이었다.그만큼 늘 아쉬움의 대상이었던 유엔가입 실현으로 인류의 대명제인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우리나라가 회원국으로서 떳떳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데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다.또한 우리외교의 활약무대가 보다 넓어짐으로써 그야말로 전방위외교를 소신있게 펼쳐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특히 남북한 모두 회원국이 된만큼 앞으로 유엔은 남북대화의 커다란 광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전세계 대표들이 지켜보는 마당에 북한이 어찌 판문점에서나 할 수 있는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유엔에서의 남북한고위접촉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유엔가입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에도 상당한 역할을 할것으로 전망됨은 물론이다.
이제 전세계를 대상으로 유엔외교를 펼치게 된다는 점에서 주유엔대표부 진용의 보강과 함께 유엔근무 외교관들의 전문성이 보다 강화돼야할 것이다.
▷윤석헌씨<8대 79.4∼81.12>◁
이번 유엔가입은 그동안 우리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정책의 산물로 볼수 있다.70년대와 같이 비동맹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남북이 경쟁적으로 「달러외교」를 펼쳤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유엔가입으로 남북간 접촉도 늘어나겠지만 결국 유엔가입은 분단이라는 냉전체제 아래서 생긴 종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는 통일이라는 사실을 이번기회에 확실히 알았으면 한다.유엔가입에 너무 들뜬 나머지 통일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북한의 개방과 개혁만이 통일을 앞당길수 있고 여기에 우리 정부당국이 가일층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특히 이를 위해서는 남한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그중에서도 경제력이 국력의 척도인 오늘의 현실에서 볼때 우리는 통일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시한번 허리띠를 졸라매 경제발전에 진력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한 통일노력은 분명 경계해야 될 대목이다.북한도 국제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씨<11대 86.10∼88.3>◁
유엔가입은 첫째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는 심리적 수치심에서 벗어나 민족적인 자긍심을 회복시켜 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둘째로는 남북한 모두 동시가입을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서로 상대방을 부인해온 허구를 깨고 현실에 입각한 새로운 관계정립의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바로 이점에서 북한도 현실인정을 바탕으로 한 대남관계및 대서방외교를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당국도 종전과는 달리 훨씬 유연한 자세로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그리고 경제력 신장에 온힘을 기울여야 한다.그러나 유엔동시가입이 자칫 잘못하면 통일을 지체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유엔가입이 실현됐다고 곧바로 통일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엔가입 이후에 새로운 출발이 이뤄지지 않고 안주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통일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동서독유엔동시가입때 서독이 보여준 행태가 우리에게는 좋은 모델케이스라 여겨진다.서독은 수많은 동독인들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베를린장벽을 넘는 사태에 직면하고서도 유엔에서 이 문제를 일체 거론한 적이 없다.민족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우리도 남북간의 문제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유엔에서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오히려 북한이 체면을 의식,경직될 가능성도 높다.
▷한병기씨<75.7∼77.5>◁
유엔가입은 한소수교와 함께 우리외교의 커다란 분기점이다.북한도 국제조류에 밀려 빠른 시일내 개방을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우리당국은 능동적으로 이에 대비해야만 한다.그러나 산모가 아기를 조산해서 좋을 것이 없듯이 남북통일도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은 다음에 이뤄져야 바람직하다.따라서 북한이 갑자기 무너져서는 안되며 경제력등에 의한 남한의 북한흡수통일은 파생되는 많은 부작용으로 해서 지양해야 될 것이다.
더욱이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통제경제간의 통합으로 야기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남북 양측 모두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된다.
따라서 우리는 주요시설의 공유화등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를 보다 많이 가미해야 하며 북한도 지나친 통제경제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시장경제방식을 점차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특히 남북통일에 대비,치밀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마련할 시점이 바로 지금부터다.
▷박쌍용<12대 88.3∼90.3>◁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올 신호탄임이 분명하다.정부수립 이후 절대절명의 과제인 유엔가입이 이뤄짐으로써 이제 남은 것은 통일밖에 없다.
북한의 경우 유엔회원국이 된만큼 그전같이 터무니없는 엉뚱한 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으로 본다.결국 북한도 어느정도 합리적인 사고로 우리와 대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북한의 대미·일관계개선도 유엔가입을 계기로 진척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전방위외교에 걸맞게 내실있는 외교를 펼쳤으면 한다.
유엔가입으로 너무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우리 외교의 나아갈 길을 생각해볼 때다.<한종태기자>
1991-09-1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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