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분규 “O”로 제2의 도약을(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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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9-06 00:00
입력 1991-09-06 00:00
우리 노사관계의 바람직스러운 전개에 빛이 비치고 있다.아니,사실은 진작부터 비치기 시작했다.87년의 6·29선언 이후 불 붙기 시작한 노사분규의 암울한 터널은 5년에 걸치는 길고도 험하고 지루한 것이었다.그러던 것이 이제 고비를 넘기면서 터널의 출구를 바라보게 되었다.

초기에는 하루에 2백67건까지 발생한 노사분규였다.그래서 87년에는 모두 3천7백49건을 기록했다.그러나 이듬해부터는 줄어들기 시작했다.건수는 줄어들었다고 해도 과격·불법의 양상은 지속되었다.그것이 차츰 준법과 탈정치색의 양상으로 변모되어 오고 있다.그러다가 지난 3일에는 처음으로 노사분규 제로의 날을 기록하기에 이른 것이다.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 바라보게 되는 터널의 출구라고 하겠다.

처음 2∼3년 동안의 노동현장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지는 것이었다.이러다가 모두가 침몰하고 마는 것 아니냐 하는 위기의식에 빠졌던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그것은 40여년 동안 억눌려온 울분의 반작용이었다.민주를 내세우면서도 현실에서 그러지 못했던 역대의 위정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하는데 따른 요동이었다.이 한풀이의 마당에 불순한 입김까지 끼어들어 기름을 부음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킨 사실도 우리는 기억한다.

오기 싸움으로 발전하여 파국을 부르기도 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노사정 모두는 자유화에 따르는 민주의 참 뜻을 배웠다.근로자는 억눌렸던 시대의 의식구조에 머물러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용자는 기업의 참된 발전의 길이 무엇인가를 배웠으며 위정은 양자의 조화로운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모두가 공생과 공멸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물론 앞으로도 이 교훈은 살아야 한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 깨닫고 보니 우리는 어느덧 무역흑자국에서 무역적자국으로 전락한 처지로 되었다.이렇게 된 처지가 우리로하여금 깨닫게 하는데에 촉매구실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아무튼 그동안 우리의 근면과 눈부신 성장을 찬탄하고 선망했던 지구촌의 눈길은 호된 비판으로 뒤바뀌고 있다.지구촌 사람들에게 우리는 허영에 찬 베짱이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반짝 흑자 속에서 진실로 소중한것을 잃어버린데 대해 우리는 냉엄하게 성찰을 해야 한다.성실과 근면을 잃은 대신 졸부의 악습만을 만연시켜 온데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한번 더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그것은 자유화·민주화의 시류속에서 그것을 영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다.방종과 무질서는 결코 그것을 영속시켜 주지 못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 삼아 우리의 노사는 제2의 도약을 꾀해야 한다.

대국을 의식하는 일체감으로 성실과 근면을 되찾으면서 생산품의 질을 높이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외채국의 불명예를 씻고 채권국에의 꿈을 이룩해 내는 길이 거기에 있다.
1991-09-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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