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강경파,「국민의 뜻」 못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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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8-22 00:00
입력 1991-08-22 00:00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성공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이것이 쿠데타 발발 사흘째를 맞은 미국의 많은 관리들의 예상이다.
따라서 부시 미국대통령의 잇따른 강경발언은 감정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쿠데타가 종국에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관측되고 있다.
즉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소련 쿠데타의 실패를 예상하고 반쿠데타전략을 세운 것으로 대부분의 언론들은 보고 있다.
쿠데타를 일찍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조직과 무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설마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최초의 생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
쿠데타 중심세력의 결집력이 예상외로 단단하지 않다는 진단은 거사당일인 19일부터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쿠데타 지도부안의 분열 또는 충분히 계획이 안된 임시변통의 조치로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그리고 발틱해안 여러 공화국들에의 쿠데타군 배치가 엉성하며 엄격한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더욱이 모스크바에 배치된 군대의 일부는 배치된 뒤 친옐친으로 태도를 바꾸기까지 하고 있다.미국관리들은 『아직까지의 사태진전만 가지고 말할 때 이것은 고전적인 쿠데타와는 다르다.탱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쿠데타 발표가 있은지 몇시간이나 지난 뒤였다』는 말로 실패를 단정했다.
또 하나의 실패징조는 쿠데타지도자들이 소련의 여러 공화국 지도자들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일부 공화국 지도자는 이미 반쿠데타 입장을 밝혔으며 다른 지도자들중 상당수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라디오와 TV 등의 언론에 대한 통제도 보통의 쿠데타 수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모스크바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우방을 독려하여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즉 미국은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경제원조를 잃게될지 모르며 국제적인 미아가 될 것임을 믿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경제난 해결책·정통성 미비가 치명적/불 르몽드지 분석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지는 21일 소련전문가 미셸 타튀의 분석을 인용,이번에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르 몽드지의 모스크바특파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소련문제전문가인 타튀는 르 몽드지 기고를 통해 이번 쿠데타상황이 지난 64년의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와 판이하고 또 쿠데타 주도세력이 경제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갖고있지 못한데다 군부내의 이견등이 겹쳐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 소련의 정치·경제상황이 현재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중국 천안문사태때의 반정부세력도 지금 소련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미약했을 뿐 아니라 당시 중국내부문제도 현재 소련에 비해 덜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우선 현 쿠데타세력이 흐루시초프때와 비교해 「권위성」「신뢰성」,그리고 무엇보다 「정통성」이 결여돼 있다고 전제,64년 당시 흐루시초프 축출세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라는 제도의 틀내에서 일을 벌였으며 또 소련최고회의가 이를 승인하고 당사자인 흐루시초프도 자신의 사임에 동의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우 쿠데타 인정을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역시 헌법상 규정되지 않은 기관이며 이는 공산당내에서도 합법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타튀는 주장했다.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또 최대한 지지를 긁어모으기 위해 「법과 질서」「범죄와 부도덕 비난」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나 이는 스탈린브레즈네프 시대에 성행했던 「러시아인 주도 질서」를 연상케 하는 「향수적」인 것으로서 다른 민족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군부내 이견을 지적,구세대 고위간부와 중간장교·사병 등 군구성원중 중간장교와 사병은 이제 정치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불만이 더 큰 만큼 대중에 보다 접근해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노선 고수를 주장하는 고위장성들 역시 최근 기존노선고수와 군개혁 필요성의 모순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파리=박강문특파원>
1991-08-2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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