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실상과 허상(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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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6-19 00:00
입력 1991-06-19 00:00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기보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일인독재와 철저한 통제로 차단된 폐쇄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펴 볼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도 북한당국의 연출과 안내에 따를 뿐 그 사회의 진솔된 모습과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참된 심성을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북한에서 보고 듣고온 모든 것들을 그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는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7일 밤 KBS­TV가 방영한 「인류 최후의 황제 김일성이 퍼레이드」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영화는 북한이 그들 체제의 우수성과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얼마나 인간을 도구화하고 그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8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 40주년 경축식에 초대된 폴란드의 한 젊은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스토리가 없고 1백만 대군중의 퍼레이드만 있을 뿐이며 들리는 것은 「만세」라는 절규뿐이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과연 저럴 수가 있는가』라면서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러나 「퍼레이드」와 「만세」로만 점철된 이 영화에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고뇌에 찬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라고 해도 사람의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표정마저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사회는 기본인권마저 무시되고 「하루에 두끼먹기운동」을 벌여야 할 만큼 생활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최근에는 주민들이 남쪽의 선거방해와 대남비방을 위한 각종 군중집회에 동원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북한에서는 예사로 일어나고 있으며 독재와 통제에 순치된 북한 주민들은 묵묵히 따르고 있다. 이같은 북한당국의 인간도구화를 이 한편의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엔에 가입하기로 결정했으며 핵사찰문제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또 대일수교를 서두르고 있고 대미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국제관계에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대남비방을 위한 선전·선동은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김정일 사진이 부착된 불온유인물이 나돌자 북한의 방송들은 일제히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를 흠모하는 분위기가 서울을 휩쓸고 있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북한의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작태는 물론 북한주민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내용이다. 국제적인 압력에 못 이겨 대외적으로는 유연한 몸짓을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체제수호를 위한 강압적인 통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북한집권층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까지의 그릇된 통치사고에서 벗어나 개방과 자유의 물결을 수용해야 한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이미 『공산주의는 끝났다』고 선언한 마당에 북한만이 그 체제를 끝까지 수호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이제라도 북한주민들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생활이 질을 높이고 최소한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인간을 정치도구화 하는 정권은 언젠가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냉엄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1991-06-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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