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장례 충돌없이 치러/장 총장 중재로 파고다공원 앞서 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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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6-13 00:00
입력 1991-06-13 00:00
◎성대서 영결식… 평화행진 뒤 모란공원 안장

김귀정양의 장례가 김양이 숨진 지 19일 만인 12일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무사히 치러졌다. 김양의 유해는 이날 하오 1시쯤 학교를 출발,파고다공원 등에서 노제를 치르고 밤늦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이날 장례행사는 큰 탈 없이 치러졌으나 일부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등은 노제가 끝난 뒤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김양대책위원회」는 이날 상오 9시30분쯤 성균관대 학생회관 1층 로비에서 발인식을 가진 데 이어 상오 10시30분쯤 본관 앞 광장에서 옮겨 영결식을 가졌다. 영결식에는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 등 유족과 계훈제 백기완 지선 스님 등 재야인사 학생·시민 등 5천여 명이 참석했다.

하오 1시쯤 영결식이 끝나자 선도차와 방송차 영정 만장 등은 학교 정문으로,김양의 유해는 11일 교내로 들어갔던 옆문으로 나왔다.

학교를 나온 운구행렬은 1만여 명으로 불어나 혜화동 네거리∼대학로∼종로5가와 4가를 거쳐 파고다공원으로 가려다 경찰이 종로3가 네거리에서막자 30여 분 동안 머물렀다.

이에 운구행렬은 선두에 섰던 장을병 총장이 현장을 지휘하던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에게 「평화행진」을 약속,파고다공원 앞으로 가 노제를 지냈다.



이들은 이어 하오 9시15분쯤 대한극장 앞에 도착해 약 1시간30분 동안 노제를 지낸 뒤 하오 10시15분쯤 김양 모교인 무학여고에 들러 운동장에서 다시 한 번 노제를 갖고 청량리∼망우리∼경춘가도 등을 거쳐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이날 새벽 김양의 시신을 안장했다.

한편 김양의 노제에 참석했던 「서총련」 서부지구 소속 연세대·서강대생 등 1천여 명은 이날 하오 7시10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고가 입구에서 경찰에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뒤 신촌로터리까지 진출,돌과 화염병 시위를 계속하다 2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1991-06-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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