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의 환경보전운동(사설)
수정 1991-06-11 00:00
입력 1991-06-11 00:00
그밖에도 기왕부터 지구를 파괴하고 병들게 하는 핵문제 공해문제를 전문적으로 추적해온 환경보전운동이 있어왔는데 그것도 통합된 기능으로 적극활동을 벌여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특별기도회 기간의 주제를 창조질서 보전·천국시민 실현으로 세우고 환경보전운동을 신도들의 실천덕목으로 벌이고 있기도 하다는 소식이다.(서울신문 9일자 보도)
종교계가 환경보전운동에 이렇게 합심하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황폐하여 질식하기 직전에 이른 듯한 지구환경의 문제가 신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인간의 반창조질서행위라는 점에서,종교적으로도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종교의 근본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환경운동은 중요하다.
종교란 어느 종파든,인간이 인간다운 도리로 신의 의지를 받들며 잘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 목표를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거역하는 환경파괴행위에 종교가 앞장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당위성이 높은 운동이므로 구체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에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까닭은 이 운동에 대한 단순한 평가 때문만은 아니다.
종교인구의 규모에 있어서는 세계의 종교계가 경이의 시선을 보낼 만큼 폭발적인 것이 우리나라다. 해마다 발행되는 종교백서에 의하면 4천만 인구 중 2천만 이상이 종교를 가진 막강한 교세의 나라다. 밤하늘의 대한민국 상공은 종교표지의 붉은 빛깔이 하늘의 별 수효만큼 많아 보인다. 그렇게 폭발하는 세력이지만 「좋은 일을 위해 선택한 신앙인」이 그렇게도 많지만 이 세력이 뜻을 함께하여 「좋은 일을 추진하는 세력」으로 성과를 올렸다는 심증이 들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뜻이 좋은 일이라도 종파를 초월하는 일은 불가능하여 「좋은 일을 하기 위한」 반목과 갈등이 원수지간처럼 극렬해지는 일조차 없지 않다.
그런 종교계에서 공해문제 해결을 위해 종파를 초월한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값지다.
이 지혜로운 움직임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기원한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다급하고 절박한 우리의 과제이므로 효과적인 운동이 되면 되는 만큼 우리의 생명이 구원받는다. 또한 환경보전운동은,자연과학적 방법과 기준에 따른 행동을 실천하는 일이지만 그 실천 동기와 성과는 정신덕목의 도야로 귀결된다. 인간이 품위있게 살 권리를 지켜나가는 환경운동을 통해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환경보전운동이 종교적 실천덕목으로 선택된 이상,이 운동은 시민인 신앙인들의 시민의식 정착과 성숙으로 결실될 수 있어야 완성에 다가간다. 그간의 일부 공해추방운동이,이른바 「운동권」의 위상이나 투쟁수단의 하나로 이용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투쟁의 효과를 위해 지나치게 실천불가능한 목표를 앞세워 선동적 혐의가 없지도 않았다. 이제부터의 환경운동은 그런 요소가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행동수칙이 환경보전의 의지에 기초하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활에 변화를 부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시민에 의해 환경감시는 저절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1991-06-11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