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구하려 장관직 사임”/셰바르드나제,회고록서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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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6-05 00:00
입력 1991-06-05 00:00
◎보수세력의 실지회복 저지를 겨냥/슐츠 전 미 국무완 가족끼리도 절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전 외무장관의 회고록이 최근 독일에서 출판되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련의 독재권력 대두를 경고하면서 돌연 사임을 발표,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셰바르드나제는 이 회고록에서 자신의 사임배경,신사고외교의 정신과 성과,서방측의 협력강화와 군부 및 보수세력의 맹반격,대미 관계,동유럽 변혁과 걸프전쟁 등 광범위한 부문에 언급하고 있다. 다음은 아사히(조일)신문이 4일 보도한 회고록의 주요내용 발췌다.

『지난 85년 6월 중순 트빌리시시에 있는 나의 집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목소리였다. 6월30일 그로부터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들은 최종 결정을 했네. 자네에게 외무장관직을 맡기기로. 내일 아침 모스크바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집무실에는 그루지야의 지도만 덩그렇게 걸려 있었다. 나는 모국어인 그루지야어와 사투리가 심한 러시아어 외엔 외국어를 모르고거기다 경험도,전문지식도 없었다.

85년 9월 뉴욕에서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과 재회했을 때 나는 「세계의 많은 것이 미소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에 좌우된다. 나는 당신의 성실한 파트너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슐츠는 즉석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후 나는 언제나 그와의 악수를 기억하고 있다. 미소 관계 역사상 외무장관끼리 서로 상대방 집을 방문하고 자식과 손자들을 소개한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게다.

89년 여름,나의 외무장관직 계속수행의 가부를 묻는 소련 최고회의 투표에서 단 한 표의 반대표도 나오지 않았지만(사태는 역전되어) 90년 10월15일 수명의 인민 대의원은 소련의 안보가 침해당했다면서 나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국내에서는 내가 더 이상 외무장관직에 머무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경향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한가지 예만 들어보겠다.(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 조인 후) 우랄산맥 동쪽으로의 병기 이동 경위다. 이것은 법적으로 모두 옳은 것 같다. 소련 최고지도부의 한 사람은 외국의 보도를 통해 이러한 「책동」을 처음 알았다고 했으나 맞지 않는 얘기다. 성실한 관계를 유지해온 파트너에게 소련 외무장관이 기정사실화된 것을 후일에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그늘 속의」 권력은 실지를 회복하려 하고 있었다. 암흑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공공연히 행동을 시작했다.

사임표명의 메모는 90년 12월20일 이른 아침에 썼다. 전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웠다.

나는 빙하에 밀려 내려가는 돌멩이와 같은 존재는 결코 되지 않겠다고 내놓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결속해서 이를 막자고 제의했다. 더 이야기한다면 나는 스스로 그만둠으로써 그(고르바초프)의 사업을 구해주고 싶었다』<도쿄 연합>
1991-06-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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