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오승호 사회부기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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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4-25 00:00
입력 1991-04-25 00:00
『우리 아들을 살려줘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대학 졸업 한 학기를 남겨놓고 지난해 9월 갑자기 신장병으로 앓아누워 아직까지 수술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신민철군(25)의 어머니 김춘자씨(49)는 신장기증자 김정민씨(26)의 손목을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5살 때 고아가 되어 20살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랐고 지금은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씨는 『자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해왔으나 경제적인 능력이 닿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신체의 일부를 떼내서라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장기를 기증하게 됐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환하게 웃었다.
김씨와 함께 또다른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한 박규식씨(45·한국주택은행 운전사)는 『둘째딸이 국민학교 5학년 때 신장염을 앓아 6년 동안 투병생활을 해도 낫지 않다가 결국에는 신앙생활로 고교 2년 때 완쾌됐다』면서 『혈액형이 딸과 같아 내 신장을 떼주려 했으나 병원에서 이식수술을 성공시키기가 어렵다고 해 이식을 못했던 쓰라린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결국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에게 기증하게 됐다』고 했다.
또다른 기증자인 표세철씨(30·보험대리점 대표)는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으나 여건이 안돼 30여 차례에 걸쳐 헌혈만 해오다 매스컴을 통해 이처럼 좋은 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곤 몸의 일부라도 떼어내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4일 하오 2시30분쯤 서울 종로2가 서울YMCA 2층 강당에서 열린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장 박진탁 목사·55) 주최 「생명의 나눔잔치」.
이날 행사에는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나선 51명 가운데 조직형검사 등 모든 검사를 마친 기증자와 이들로부터 신장을 받을 수술예정자 등 10여 명이 참석,생명을 나누는 고마움과 보람으로 극적인 첫 대면을 했다.
기증자 모두는 기증사실이 수혜자는 물론 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으나 주최측의 끈질긴 설득으로 수혜자들과 만나 훈훈한 사랑을 나눴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처럼 훌륭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니 참으로 고마운 모습들이었다.
1991-04-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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