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한고비는 넘겼으나(사설)
수정 1991-03-20 00:00
입력 1991-03-20 00:00
이번 국민투표실시의 직접적인 동기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자유화·민주화로 일시에 분출된 민족독립운동 욕구로 조성된 소연방의 국가적 붕괴위기 극복에 있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번 국민투표의 승리를 통해 발트 3국 등 소수민족공화국들의 탈소독립운동에 제동을 걸고 자신이 마련한 각 공화국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 「주권공화국연합」의 새로운 연방제를 출범시킴으로써 민족문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소역사상 최초인 전국 규모의 민주국민투표 승리를 통해 국민적인 신임을 획득한 명실상부한 대통령의 위치를확보하게 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 국민투표의 승리를 통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15개 공화국중 6개 공화국의 국민투표 보이콧과 낙승속에서 드러난 지지율 50.02%의 모스크바 등 도시지역이 찬성률 저조가 보여주듯 실질적인 면에서 그가 그러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민투표는 각 공화국의 투표결과를 참조하면서도 전국집계로 찬반을 결정하게되어 있고 독립지향의 6개 공화국은 모두 합쳐도 인구면에서 7%,영토면에서 3% 밖에 안되는 소수파로 결과는 처음부터 자명하다는 것이 반대파들의 주장이었다. 투표보이콧 6개 공화국 등이 결과에 승복할리 없을 뿐 아니라 탈소 독립운동을 더욱 격화시킬 공산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결국 국민투표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민족문제위기가 단시일내에 극복되기는 힘들 것으로 봐야 할것 같다. 고르바초프가 이번 승리를 배경으로 신연방조약을 서두르고 독립지향공화국들에 대해 강경책을 동원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 위험도 큰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제는 찬반의 쌍방이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는 것이라 하겠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형식적인 결과 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중요시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발트 3국을 비롯한 6개 공화국과 옐친 등 반대파는 개혁과 탈소독립운동을 가능케한 고르바초프없는 소련의 향방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련 국민투표는 소국민이 처음 경험한 전국 규모의 자유민주선거였다. 민주주의에는 다수의 횡포도 소수의 횡포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길이라도 타협과 중도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이 그런 길을 모색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소련을 위하는 길이요,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 틀림 없다. 경제의 부진과 연방제진통,그리고 최근의 보수우경화경향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해 아직도 동정적인 것은 그의 민주화 개혁의지를 신뢰하기 때문임도 아울러 강조하고 싶다.
1991-03-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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