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수용”… 아랍의 변화/이창순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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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3-09 00:00
입력 1991-03-09 00:00
걸프전쟁은 아랍인들의 의식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많은 아랍인들은 외세를 배격하는 전통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외세와의 협력과 공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랍인들의 이같은 변화의 한 단면은 다마스쿠스 선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시리아 및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협력협의회(GCC) 6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6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회담에서 채택한 마스쿠스선언은 아랍평화유지권이 중동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중동의 새 질서와 집단안보체제의 한 모델이 될 다마스쿠스선언은 외형상으로는 아랍평화유지군이 아랍의 안보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군사적 연대를 바탕으로한 집단안보체제다. 아랍국가들이 집단안보체제를 위해 중동의 군사강대국인 이란과 이라크를 배제하고 서방세계를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전통적인 아랍민족주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아랍인들의 의식속에는 늘 「제국주의침략자」로 인식되어 왔으며 그들은 서구문명의 굴욕적 지배를 받아왔다고 생각해 왔었다. 서방세계에서의 연대는 아랍권에서는 하나의 죄악으로까지 인식돼 있었다.

그러나 걸프전쟁은 이같은 아랍인들의 뿌리깊은 반서방 사고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대부분의 사우디 국민들은 사우디정부가 자체방위를 위해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요청한 것은 현명하고 용기있는 결단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아랍인들은 지금 아랍세계의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을 경계하고 있다. 그들은 형제국의 침략위협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거부해온 서방세계의 군사적 지원에 의존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랍국가들은 과거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외세를 배격하려 했듯이 지금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흔히 「사악한 악마」라고 비난해온 외세와의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아랍인들의 이같은 의식변화는 그들의 대외명분인 아랍민족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아랍인들이 늘 내세워온 아랍민족주의도 결국 국가적 이익 앞에는 「허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걸프전쟁이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암만에서>
1991-03-0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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