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의 스타일과 논리/최택만 논설위원(서울칼럼)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1-03-02 00:00
입력 1991-03-02 00:00
최각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취임이후 관가의 관심은 그의 정책기조보다는 정책운용 스타일에 관해 쏠리고 있는 것 같다.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내각이 새로 들어서면 으레껏 새 팀의 정책기조가 성장이 될것인가,그렇지 않으면 안정쪽으로 기울것인가가 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제6공화국에 들어서는 조순경제팀의 등장과 함께 형평과 경제개혁 문제가 정책기조를 이루는 듯했다가 그의 재임말기에는 성장을 주장하는 여당의 압력에 밀려 경기부양에도 상당한 정책비중을 두었었다. 지난달 18일 개각으로 퇴임한 이승윤 부총리팀이 등장하면서는 금융실명제를 유보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로인해 개혁과 형평의 정책기조가 퇴조했고 성장우선론이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이전부총리팀이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아 심각한 물가불안 사태가 야기되었고 이는 그의 정책기조를 안정쪽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그의 경사된 성장지향적 집념과 대기업 경사적 사고에는 변함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성장과 안정사이를 오가다 퇴임했지만 퇴임의 결정적 이유가 물가문제로 알려지고 있다.

최부총리는 취임후 『경제는 안정과 성장,국제수지가 마의 삼각관계에 있어 어느 하나만 택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화가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경제상황으로 보아서는 우선 안정이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고 첫 소견을 밝혔다. 이 발언은 전임 부총리의 경제정책과 기본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기본골격에 변함이 없는 탓인지 최부총리의 취임이후 관가에서는 그의 업무스타일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의 성격이 깐깐하다든가,제3공화국 시절 김학렬 부총리가 재등장한 것 아니냐는 등 갖가지 화제가 오가고 있다고 들린다. 작고한 김전부총리는 역대 부총리 가운데 누구보다도 독특한 업무 스타일을 가졌고 일화도 숱하게 뿌렸다.

그는 호·불호가 분명해 사람을 가져가며 좋아하고 미워했다. 그가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있을때 송모과장은 넋이 빠지도록 혼쭐이 난뒤 차관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그만 벽에 있는 캐비닛 문을 열고 들어가머리를 부딪힌 일이 있었다. 걸핏 하면 직원들에게 『한강에 가 빠져 죽어라』며 소리를 지르기로 유명했다.

그는 험구가이기는 했지만 수리에 밝고 두뇌회전력이 무척이나 빨랐다. 『대통령을 시험봐서 뽑는다면 틀림없이 내가 대통령이 됐을거다』고 말할 정도로 기재였다. 그당시 김전부총리가 신임 최부총리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아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부총리가 수리에 밝고 두뇌회전 또한 김전부총리와 비슷해서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최부총리는 험구가는 아니다. 그러나 정책을 밀어붙이는 면에서 서로 비슷하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로 닮은 점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김전부총리가 직원들에게 한 말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말은 『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회나 조합의 돈은 독약이니 먹지 말라는 말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수서사건을 계기로 부총리에 취임한 최부총리는 아마도 『고기는 일체 먹지 말라』는 말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면도날」이라는 최부총리의 별명에 걸맞게 공무원들의 기강을 잡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어 직원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최부총리가 앞으로 업무면에 한가지 꼭 해야할 일은 『김학렬이가 안된다면 안된다』는 김전부총리와 같은 확고한 소신을 정치권에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경제는 최근 너무 많이 정치논리에 의해 훼손되어 왔다. 뜨거운 정치논리가 냉엄한 경제논리를 너무 많이 지배한 탓으로 정부정책의 신뢰성이 손상된 일이 많았다. 일례로 금융실명제 실시 유보는 정치논리에 의해 밀려난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최부총리의 향후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가 바로 정책의 신뢰성 회복이다.

또 이번 경제팀이 해야할 것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물가안정이다. 올들어 두달동안 소비자물가가 무려 3.5%나 올랐다. 물가비상사태가 빗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최부총리는 「남덕우사단」의 성장론자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이전부총리와 마찬가지로 말로만 물가안정을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최부총리가 장관으로 재직중인 제3공화국때처럼 안정을 성장을 위한 종속변수로 보지나 않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지금의 물가폭등 사태는 우리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예고해 주고 있다. 민주화라는 전례없는 정치적 변혁기에 있어 물가안정은 유신시대나 권위주의 시대의 안정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성장이 체제유지의 원동력이 되지만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는 안정이 체제유지의 필수적 요건이 된다. 이번 수서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개탄이 컸던 이면에는 물가정책을 비롯한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이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제팀은 남미에서 보듯이 물가불안이 체제유지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에 보다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부총리에게 기대하고 싶은 다른 한가지는 자본주의 경제의 운행원리인 경쟁에 대한 공정한 룰(규칙)을 정하는 일이다. 수서사건과 같은 비리의 뒷면에는 특혜라는 공정치 못한 법칙이 개재되어 있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민주화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최부총리는 비리나 부정에 대해 『최각규가 안된다면 안된다』는 실천적 일화를 남겼으면 한다.
1991-03-02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