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뇌물외유」 막후절충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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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1-30 00:00
입력 1991-01-30 00:00
◎“불기소로 매듭”… 해법찾기 안간힘/“입법부 존립에 위기” 여·야 공감대/「자진사퇴」 거부… 제명방식등 검토

국회상공위 「뇌물외유」 사건 관련의원들에 대한 검찰의 구속방침이 확정된 이후 이들 의원들에 대한 사법처리의 「강도」를 완화시키기 위한 정치권의 막후절충이 수면아래에서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은 당초 사건의 파문을 조기에 진화시키기 위해 거의 반공개적으로 관련의원들의 의원직 자진사퇴를 통한 기소유예 혹은 불기소 처분의 정치적 해결을 모색했으나 관련의원들이 의원직 자진사퇴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데다 이같은 정치권의 해결방식에 비난여론이 드세지자 구속영장 청구보류기간인 2월9일까지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해결의 전술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만일 관련의원들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의원직을 사퇴했을 경우 일본의 리크루트사건 관련의원들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스캔들 관련 의원들이 「정치적 사행」이나 다름없는 의원직 자진사퇴를 통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국민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불기소처분을 얻어낸다는 생각인 것같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정치권 전체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 시점에서 비난여론의 강도때문에 정치권의 정치적 해결방식이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이번 임시국회 회기중 국회의원 윤리강령 제정,국회윤리위 신설 등 국회차원의 자정노력을 보여 우선 여론을 무마시킨 뒤 의원직 사퇴를 않더라도 당차원의 탈당권유 혹은 제명의 중징계를 가하는 선에서 불구속기소나 기소유예의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치권이 이처럼 전례없이 국민의 법 감정과 검찰권에 맞서 정치적 해결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은 여야의원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느끼고 있는 「공범」 의식과 함께 입법부 존립에 대한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즉 이번 사건 관련 의원들을 철저히 매도,희생양으로 삼기엔 그와 유사한 관행이 오랫동안 정치권에 답습돼온데다 이번 사건을 구속기소로 방치하게 되면 현재의 정치풍토를 감안할 때 앞으로 또다른 의원들이 구속기소돼야 할 사태도 얼마든지 양산될 수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정치적 해결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당분립이라는 명분을 빌려서라도 공권력에 대한 입법부의 보호막을 마련해야겠다는 것이 현 정치권의 다급해진 심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민자당의 경우 공권력과 정치권이 대결 국면으로까지 치닫게 되면 노태우대통령의 통치 후반기에 국정수행의 강도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정치적 해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향후 정국운영방안을 둘러싼 여권 핵심세력간의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만만찮게 대두되고 있다.

노재봉 내각출범과 더불어 권력 핵심부에 진입하게 된 율사출신의 신 「개혁주도」 세력들이 향후 지자제선거 등 일련의 선거와 6공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운행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 차원에서 정치권·학원 등 각 부문에 걸친 구조적 비리에 대해 메스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민자당을 중심으로 한 구실세들이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노대통령의핵심적인 향후 정치일정인 내각제 개헌이 무산된 점을 비판하면서 이에 따른 「적극대응론」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뇌물외유」 사건을 터뜨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대해 노대통령이 잔여임기 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정치권의 부담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아래 민자당의 단합과 여야의 공존을 최우선시하는 구 실세들은 신진세력들의 질주를 차단하고 기존의 영토를 수호하는 방편으로 정치적 해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속방침까지는 신진세력의 기습공세에 정신없이 밀렸지만 「정치권의 심정적인 공감대」를 무기로 정치적 해결이라는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평민당측도 지난 26일 김영배총무가 사건 당사자인 이재근의원을 만나 사법처리를 면제하는 대신 의원직의 자진사퇴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라든가 28일 김대중총재가 이의원에게 당차원에서 중징계하는 대신 사법처리의 강도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매듭지어질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등의 일련의 움직임으로 볼때 정치적 해결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의원의 경우 평민당의 창당 당시 총무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점을 감안하면 이의원이 「혼자 당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입을 열게될 경우 평민당의 정치자금줄이 노출될 뿐만 아니라 김총재의 정치생명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위험부담률 때문에 검찰의 구속수사라는 사법처리의 강도를 완화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정치적 절충가능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의원이 두차례에 걸친 김총재와의 면담에서도 당차원의 제명이나 출당조치 등 중징계에 거부감을 나타낸데다 관련 3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거부하기로 행동통일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여야의 정치적 해결노력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이들보다 사안이 결코 경미하지 않은 박재규(민자)·서석재(무소속)의원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정치권이 의원직을 사법권에 대한 유일한 보호막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 의원들한테서 사퇴를 유도하기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정치적 해결의 성공여부는오는 2월9일까지 전개될 정치권의 자정노력과 이에 대한 여론의 호응도,정치권의 관련의원들에 대한 정치적 제재정도에 대한 합의점 도출에 달려있다고 하겠다.<우득정기자>
1991-01-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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