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희1동사무소 서무주임 한윤택주사(밝은 삶을 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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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1-01-04 00:00
입력 1991-01-04 00:00
◎동네민원 해결에 “짧은 하루”/고충찾아 발로 뛰는 공복 16년/진흙탕길 포장등 365일 바쁜 나날/성금모아 철거민에 셋방 얻어주기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불러주십시오』

『한주사도 건강하셔야지요. 해마다 이렇게 잊지않고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1동사무소 서무주임 한윤택씨(43)는 해가 바뀔 때마다 마을주민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일로 한해를 시작한다.

공무원생활 16년째인 그가 연희1동사무소에 근무하게 된 것도 올해로 4년째이다. 그동안 반상회는 물론이고 틈날 때마다 이웃 주민들을 만나 이제는 동사무소 「한주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려면 직접 나가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지요. 그것이 곧 공복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주위사람들이 마치 별난 일을 하는 것처럼 대할 때는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가 맡은 일에 늘 성실하고 동민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남다르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7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누나 2명과 어렵게 자라 66년 고교를 졸업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일정한 직업없이 방황했다.

고교졸업후 10년을 하는 일 없이 지낸 끝에 사람구실을 하려면 남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려면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75년 서울시 공무원(서기보)이 돼 동대문구 답십리2동사무소에 처음으로 부임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는 공무원들에게 무척 힘든 시절이었다. 특히 답십리2동은 그때까지만해도 서울 변두리로 골목길이 거의 진흙길이었다. 새마을사업으로 골목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려해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으레 관에서 해주는 것으로 알고 전혀 돕지를 않았다.

한씨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밤낮없이 설득한 끝에 포장공사를 무사히 마쳤다. 처음에 반대했던 주민들조차도 한씨의 열성을 고마워했다.

공무원 초년생이었던 그는 이때 많은 것을 배웠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해도 주민들과의 유대관계가 나쁘면 업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한씨는 근무지를 옮길때마다 제일 먼저 주민들을 만나고 친하는 일부터 해왔다.

반상회때는 빠짐없이 참석해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 민원 상담 및 심부름도 했다. 소관이 아니거나 자기힘으로 해결이 어려운 민원 사항이라도 귀찮아 하지 않고 힘닿는데까지 해결해 주려고 성의를 다했다. 덕분에 내무부장관 표창 등 큼직한 상도 10여차례나 받았다.

주민들을 가족처럼 대하며 온갖 불편과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해결해주다보니 그에게는 일년내내 쉴틈이 없다.

연희1동에 와서만해도 무허가건물에 살다 철거명령을 받은 주민 문모씨(52)의 어려움을 알고 박봉을 털어 매달 10만원씩 생활비를 대주고 동네주민들에게 호소,1천만원을 모아 셋방을 마련해 주었다. 또 지난해 1월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김모씨(53)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경남 진주까지 내려가 장례를 도와주었다.

이제 연희1동 주민들에게 한주사는 없어서는안될 성실한 「심부름꾼」이 되어있다.

주민 최성식씨(42·상업)는 『한씨처럼 주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공무원도 드물다』면서 『돈으로만 남을 도와 주는것보다 몸과 성의를 다해 모든일을 자기일처럼 솔선수범하는 그의 노력덕분에 동네 전체가 서로 믿고 도우려는 밝은 분위기로 가득하다』고 자랑스러워 했다.<육철수기자>
1991-01-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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