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과 「이순」의 세월(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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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12-26 00:00
입력 1990-12-26 00:00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하산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당임과 관계가 깊은 전임 대통령이,유배지에서 세 번째 겨울을 나게 되는 일에 고통을 느낀다는 노 대통령의 간곡한 발언으로 하산시기와 장소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 의해서 이런 논의가 시작되는 것에 항간의 여론은 양분되는 것 같다. 하산의 결정은,입산의 결정이 그랬듯이 당사자가 할일이지 통치권자인 공인이 할일이 아니라는 것,연희동 사저로의 복귀는 온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아직도 모든 것이 시기상조라는 것 등 의론이 여러 가지로 분분하다.

깊은 산사에 칩거하여 25개월의 세월을 보내며 은둔했건만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천하가 민감해지는 것이 「백담사 문제」다. 이 점만은 유폐된 곳에 있는 전 대통령이나,그를 「가슴 아파하는」 현 대통령이 다 함께 마음에 새겨둘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전 대통령의 유폐생활이 이쯤에서 정리되고,하산하여 범상한 시민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동의한다.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 생활은 유배생활이고 강요된 은둔이 분명하지만 법적인 집행에 의한 결정은 아니다. 오히려 법적으로는 정부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러므로 남은 것은 국민에 의한 정서적 형벌의 무게이고,그에 대한 겸허한 감내라고 할 수 있다. 극악하거나 집요하지 못하고 뒤가 무른 편인 우리의 품성에 비하여 그의 「3번째 겨울」 산사생활은 오히려 긴 편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의 유감스런 호소가 아니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유유자적하며 은퇴생활을 보내는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근대사의 치열한 소용돌이 속을 헤쳐오느라고 그런 「전 대통령의 면모」를 경험하지 못한 불행을 우리는 한탄스러워하고 있다. 은둔생활을 끝내고 보통시민으로 복귀한 전두환씨가 유순하고 평온한 환갑노인의 풍모로 반상회 모임에라도 참석하여 한담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이른바 오공의 잔존세력을 결집하여 「정치」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소리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의 용서와 수렴을 전제로만 가능하다. 그를 정치적 선택으로 인정할 국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를 에워싸고서 재기를 꾀하는 세력이 꽤 많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국민의 심판이라는 시험대 앞에 서지 않고는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



그와 직접 적대해 있던 정치권의 지도급 인사들이 「그의 복귀」에 대해 무심할 만큼 집착하지 않는 일도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정치지도자들이 협량하지 않은 금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스스로의 입지들에 그 만큼 자신이 생겼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화 열풍이 절절 끓어오을 때 모든 정치지도층이 솔선하여 한 약속은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현명하고 성숙한 약속이 명실공히 지켜지는 것은 전직 대통령이 자기 발로 유배지서 걸어나와 자기 살 곳에 정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하여금 하산하여 이순하는 세월을 살게 하는 것은 국민이 허락하는 순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990-12-2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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